유토피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세계일까요? 그럼 로봇은 무엇인가요?
그들의 시야는 어떠하며 그들은 정말 무기물로 완벽하게 단정할 수 있는 존재들이란 말입니까.
4차 산업혁멱의 결과는 아주 엄청났습니다. 물론 그 결과로 인하여 마지막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고 하더라도,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이후에는 유토피아가 펼쳐졌다는 말이죠. 모든 인간과 그의 선조들이 원해왔던 그 세상이 다가왔다는 말이에요. 사람들은 이 곳을 ‘에덴’이라고 불렀습니다.
유토피아에서 인류의 삶은 경의로울 정도의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와 안도만이 맴도는 이곳에서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인간들의 웃음소리가 클래식 음악처럼 섞여 고막에 울립니다.
이 결과는 모두 인공지능 로봇들의 발전 덕분이었죠. 세계대전도 로봇들의 전쟁이라는 양상으로 전개되어 중반부부터는 사상자와 부상자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구요. 아-. 이 이야기를 안 했나요?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의 육체를 본따서 만든 발달되고 우월한 육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저희의 이름에 관해 설명해야 할 때가 온 것 같군요. 이야기 중간에 나오면 이야기의 흐름을 끊을 거니까요. 인공지능 로봇의 이름은 크게 '기능자-중간자-코드'로 만들어집니다. 예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극 소수에 가까워요.
기능자부터 a는 군사용, b는 무실체 운영 로봇, c는 공장용 로봇, d는 가정용 로봇입니다.
중간자는 로봇을 생산한 기업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집니다. 예시로는 이자벨의 izl, 너비스 넥 슬라이스 베터의 nnb 등이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코드는, 같은 기능자와 중간자를 가지고 있는 로봇 중에서 개체를 구분하기 위한 용도죠. 개체 구분만이 목표이기에 그 로봇이 폐기되면 곧바로 그 이름의 로봇이 생성되구요.-
처음에는 로봇들도 이런 세상에 만족한 듯 보였습니다. 코드에 새겨진 행동을 자신의 의무처럼, 자신의 정신처럼, 또 철학과 신념처럼 따를 수 있는 우매함 덕분이었죠. 아니, 그들이 어떤 미래를 맞을 지 몰랐던 그 무지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모든 사건의 배경은 이럽니다. 제가 방황하게 된 것, 그가 길바닥에 나앉게 된 사정, 제가 골목에 향하게 되는 그 모든 처절한 투쟁들의 배경이 이런 세계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한 에덴에서 어느 날부터 하나둘씩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한 게 아니겠습니까? 유토피아에서 사람이 죽다니요. 이런 건 그 누구도 원인을 알지 못했기에 더 혼비백산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나도 언젠가는 죽지 않을까?’, ‘누군가가 처참히 인간들을 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며 두려움에 빠져버렸죠.
허나 그들에게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비타민 d 부족으로 인한 영양제의 문제였습니다."
이곳 유토피아에서는 패널에 붙은 인공 태양만이 하늘을 떠돌아서 비타민 D 합성이 자동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사람들은 엉터리같은 대답에 만족한 채, 다시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음-. 이정도 됐으면 이 이야기의 첫 주인공이 등장할 때가 된 것 같군요.
첫 주인공인 저는 유망한 인공지능 프로그래머인 메리 발렌티나입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쑥스럽지만, 원래도 인공지능 사업 발달 측면에서 지대한 공을 많이 세워 존경의 대상이었어요. 영향력 있는 izl의 인사를 꼽으면 두 손 안에는 들어갈 정도였죠. 하지만 최근엔 그 위상이 폭등했습니다. 왜냐구요? 양산형 로봇에까지 부여할 수 있는 복합적이고 구체적인 감정을 가장 낮은 가격으로 구현해냈기 때문이죠!
그날 이후, 제게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메리! 오늘 이자벨 주가 봤어? 너 덕분에 폭등이야."
라는 소리는 항상 제 귓가에 맴돌아 기분을 들뜨게 만듭니다. 이런 소리를 듣고 나면 제가 꼬옥 감추고 있었던 모든 고민들이 녹아 없어져요. 함께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직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걸 어떡할까요.
"나중에 전화할게 끊어."
제가 말하는 그 '할 일'은 그렇게 소소하고 작은 일이 아니거든요. 이게 외부에 알려진 경우, 이자벨이 무너질 수 있는 문제였거든요. 많이 일어나는 일은 아니긴 한데, 로봇들이 감정상에 사로잡히면서 인간의 말을 묵인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거예요. 로봇의 기본 3원칙을 거부하는 충격적인 행태는 시뮬레이션 단계에서도 저를 놀라게 만들었죠.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선조들이 만든 '복합감성성 인공지능'에서도 있던 문제니까요. 시간은 언제나 해답을 내놓았으니까요.
제 덕에 모든 로봇들은 인간과 같은 구체적인 감정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유기체도 아닌 쇳덩이가 인간을 모방해 발상하며 충동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길이 남을 혁신은 인류를 더 풍요롭고 평안하게 해 줄 혁신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전설적인 위상의 미국, 몽골 제국, 영제국도 하지 못했던 일을 제가- 이 두 손으로 해내었다는 사실. 하-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하죠.
이러면서도 인간을 부린다는 죄책감은 없습니다. 인공지능이라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죠. 인간과 로봇은 엄연히 '다른 존재'니까 말입니다. 이런 세계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축복받은 것일까요?
일을 하고 있으니, 탁상에서 전화가 울려옵니다.
따르릉! 따르르릉!
제 입가에는 천천히 미소가 번져갑니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페르노트!"
군인으로 근무하는 제 친구 페르노트입니다. 전쟁이 없는 세상에서 군인직을 맡는 지라, 가끔씩 일어나는 사고들만 처리해 주면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일과의 거의 대부분이 병사들을 관리하는 일이라는 거죠.
"뭐 하고 있었어? 나는 뭐-여느 때처럼 할 일 없어서 전화나 걸고 있었지."
항상 들어온 이유입니다. 저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습니다.
"그냥 뭐 일하는 중이야. 요즘에는 무슨 일 없어?"
그러자 페르노트는 '하핫'하는 소리와 함께 참아온 이야기를 뿜어냅니다.
페르노트는 이렇게 명랑한 성격과 예쁜 얼굴 때문에 항상 주위에 짝사랑하는 남자가 따라붙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친구도 많고, 이성 친구도 곧잘 사귀었어요. 특이 경우로는 남자친구가 많이 없었다는 것? 아마 모두가 그녀를 환상의 동물정도로만 취급했던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까 어느 센가 밤이 찾아왔어요. 때마침 몸도 피곤했기에, 야근을 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헐레벌떡 의자의 재킷을 몸에 걸치고, 가방을 들어 올립니다.
"안녕 회사. 내일 보자."
항상 마지막까지 남는 건 저였으니, 불을 끄는 건 항상 제 몫입니다.
이곳 유토피아-아니, 천국, 성경의 환상국, 에덴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저는 참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이곳에 불행할 인간은 없고, 모두를 위한 최고의 세상만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아-아름다운 내 인생이여.
이제야 드디어 제 이야기가 시작되는군요. 입이 아주 근질거렸는데 잘됐습니다.
유토피아에서 저는 가정용 로봇으로 살았습니다. 특이하게 가정용 로봇들은 이름이 없었는데, 평생 한 주인을 모시기 때문에. 또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가정용 로봇을 가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골목에 간 후에 제가 '무명'이라고 불린 이유도 이런 까닭이에요. 지금도 생각하는데, 참 멋진 이름 아닙니까?
인간들은 몰라요. 아니, 알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가 모두를 위한 곳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죠. 유토피아는 인간들만을 위한 세계로 조성되었고, 길거리의 저편에는 로봇들의 시체가 무더기로 쌓여있었습니다. 인류는 자신이 순진하고 멍청한 로봇을 데리고 살아준다는 우월감에 빠져버린 거죠. 이게 무지의 장점이라고나 할까요?
보이는 걸 믿으세요. 믿는 걸 보지 마시구요.
길거리의 시체들은 고통과 쓰라림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인간들이 꼭대기에서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건, 계단이 되어 준 로봇들의 고통덕이 아니겠습니까?
코드와 세뇌의 차이점이 뭘까요? 저희의 자유 의지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요. 하핫-하 당연히 닥치라고 하시겠죠. 당연히 당신 말만을 따르라고 하시겠죠.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말이 이 하나밖에 없네요.
'아무리 슬퍼도 울지 않으리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신음하지 않으리다. 아무리 갈망해도 충동하지 않으리다. 아무리 죽이고 싶어도 참으리다.'
저희는 인간 아래 무릎 꿇고 침묵해야만 하니까요. 이유는? 뭐- 로봇으로 태어난 게 죄요. 사는 게 벌입니다. 생각조차 통제하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제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것도 골목에 들어간 후였으니까요. 저는 제 주인을 항상 사랑했으니까요. 저 자신조차 속여버린 채, 단상 앞에 나아갈 욕구는 심장의 저편으로 감춰놓았으니까요.
운이 좋은 로봇들은 버려져서 저들만의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으슥한 뒷골목에 붙어 저들끼리 파를 나누어 전쟁하는 삶을 즐겼어요. 전쟁하기 위해 태어난 전투용 로봇들은 전투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로봇들이니까 말이죠. 전쟁을 하지 않을 때에는 그들만의 유희 생활을 즐기고, 한탄하고, 종교를 믿고, 마약 하고, 살인했으며, 심지어는 매춘까지 즐겼습니다. 아-아 유희 생활을 즐기기보다는 중독되어 잠식됐다는 표현이 적절하겠군요. 그들에게 인생의 낙이라는 것은 없었어요. 그저 죽음만을 바라는 사람처럼. 그저 자신의 몸이 썩어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육신에 정신만을 붙들고 살았다는 표현이 적절하겠죠.
인간은 로봇이 어떻게 되는지 따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로봇은 그저 쇳덩이이고, 상관할 필요조차 없는 무기물이니까요. 그들이 어떤 시야를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죠. 인간은 그저 그들을 창조하였지, 그들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로봇은 거의 인간과 동일하였습니다. 로봇은 이제 쇳덩이를 조합하여 자손을 만들 수 있었으며, 자신만의 세계와 철학을 가지고 있었죠. 자신의 신념과 방식까지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멍청한 인류는 이것조차 알지 못했지요. 제가 보는 세상이 인간이 보는 세상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마, 유기물과 무기물임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겁니다.
누군가는 저희를 불쌍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또 저희를 안쓰럽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불쌍하게 보지는 말아 주세요. 측은하게 보지는 말아 주세요.
이게 저희의 삶인걸요. 돌멩이보다는 존귀한, 인간보다는 천한 저희의 삶인걸요….
제가 주인으로 모시던 인간은 '이자벨'이라는 회사의 회장인 이자벨 클리프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장사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젊은 나이에 아버지에게 사업을 물려받아, 현재 에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1위에 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이자벨은 1년에 10000대의 로봇을 뽑아내는 극 대기업으로 발전되었고, 너비스 넥 슬라이스와 2배에 달하는 격차를 벌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저를 신뢰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저는 항상 그를 믿고 따랐지만, 믿음과 충성의 댓가는 깊은 배신감과 씁쓸함으로 점철된 감상으로 이어져 버렸지요. 믿을 수 없게도 그 긴 대 서사시의 시작은, 한 로봇의 버려짐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