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낙은 깔끔해진 그의 집을 보며 만족하는 것 외에 없었습니다. 제가 집을 치우고 나면 윤기가 돌아 집이 반짝거렸으며, 저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어요. 그가 저를 믿는 이유이자 제가 최신형 모델이라는 증표와도 다름 없는 자랑입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점점 더 빨라졌어요. 저보다 더 최신형인 로봇이 차고 넘쳤다는 말이죠. 이 이야기는 잠시 집어치우고 다른 이야기로 가봅시다.
언제는 제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클리프 씨는 무슨 상자를 들어 옮기고 있었어요. 착하고 헌신적이었던, 아니 올바른 말로 하자면 호구 같았던 저는 재빨리 달려가 그 상자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힘듦과 고마움을 담아 크게 한 숨을 내쉬었어요.
"고마워"
그가 작게 한 번 말해주자, 저는 너무나도 감동했습니다. 인간이 내게 고마움을 전하다니. 저는 방긋 웃으며 '감사합니다'란 입발린 말을 전했죠. 그러자 그가 아쉬움과 미련 섞인 오묘한 표정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표정의 의중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박스 안에 든 게 너무나도 궁금했죠. 제가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참을 수 없는 의문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건 무엇입니까?"
제가 묻자 그는 친절히 미소를 지으며 자식을 안방으로 보내었어요. 여기에서 그의 이름은 이자벨 러프로, 어렸을 적부터 이자벨 그룹의 후계자로 발탁된 아이였습니다. 참으로 똘똘하고 활기찬 아이인데 어딘가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아무튼 속을 알 수 없는 꼬마 아이입니다. 여리고 약해 보일 때도 있지만 언제는 자기 아비보다 어른스러워 보일 때도 있어요.
아무튼 방으로 들어간 아이를 뒤로하고 저희는 진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내가 이제는 너를 떠나보내야 할 것 같아."
사실 정말 놀라 말이 안 나왔던 거지만, 저는 애써 덤덤한 척했지요. 어쩔 수 없는 일이이었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우리 5년의 추억은 그 추억 그대로 간직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아-아 이건 그저 제 문제겠죠. 그저 잊으면 되는 일이자,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니까요.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본사에서 폐기되는 겁니까?"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해주고 싶은데, 절차상 어쩔 수 없어. 예외 경우가 있으면 안 돼. 너는 아마,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 수도 있는데- 버려질 거야. 내가 aaa한테는 잘 말해둘게. 그저 그 상태로 보내달라고."
aaa. 로봇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자자한 로봇 폐기 전담 중소기업입니다. 폐기비용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어떠한 방법도 서슴치 않다고 유명하거든요. 유토피아에서 버려지는 로봇은 팔다리 멀쩡하게 벗어나면 다행입니다.
"잘 들어. 너는 버려지면 골목부터 찾아. 내가 널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야. 적응이 힘들더라도, 어떠한 수모를 당하더라도, 그 추운 지옥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리고 골목에 가면 수거도 안 당할 것 아냐?"
로봇을 죽이는 건 불법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과거 로봇 윤리가 언급되었을 때 만들어진 특별법이며, 그래서 로봇은 고통 없고 비싼 방식의 '특수 폐기'를 당하게 됩니다. 버려진 로봇들이 유토피아 장막 밖에서 끔찍하게 사망하면 이미 죽은 고철을 수거해서 다시 로봇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죠. 로봇 윤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로봇을 서서히 또 잔혹하게 살해한 주범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끔찍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욕심이라는 게.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이라는 게.
얼마 후에 저는 버려졌습니다. 러프가 저를 많이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어떡하겠습니까?
정말 충격적인 소식은 그 이후에 클리프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장례식에서는 역대 최고의 이자벨 회장의 죽음에 대해 눈물바다가 펼쳐졌다고 하더군요. 돌아갈 곳도 없이 떠돌아다녀야만 하니, 말 그대로 이제는 갈 곳마저 없습니다. 그 때 제 머릿속에서 울린 말은 단 한 마디였지요.
"골목. 골목으로 가자."
골목이 어딘지는 몰랐지만 정처 없이, 또 생각 없이 걸었어요. 제 머릿속에 든 것은 오직 죽고 싶지 않다는 강한 열망과 최후의 승자가 되겠다는 강한 포부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배터리가 점점 나가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도, 악으로 버티면서 걸었습니다.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많이. 그곳이 어딘지도 몰랐어요. 이제 주어 담을 수 없는 주사위를 던져버린 거죠.
3시간쯤 걸으니 도시화되지 않는 땅이 보였고, 5시간쯤 걸으니 황폐화된 대지가 보였지요.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엔 새로운 세상이. 그 결과가 로열 플러쉬인지 하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카드는 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몇 걸음 더 걸으니 얇은 막을 통과하는 듯 한 오묘한 느낌과 함께 장막을 벗어나게 되었어요. 옷을 벗는 듯 한 이 느낌. 이게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일까요? 이 느낌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생각을 멈추고 다시 걸어갔습니다. 저 앞에 골목으로 향하는 로봇 두대가 보였거든요. 하나는 다리를 잃은 채로 기어갔고, 하나는 몸이 기형적으로 변해 끔찍한 자세로 쓰러졌습니다.
나는 꼭 살아남고 말으리. 저들과 달리 몸 성하게 인간 앞에 미친 듯 웃어주고 말으리.
자유의 대가는 혹독했어요. 밤엔 너무 추워서 엔진 타는 열에 김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천천히 죽어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너무나 두려워요. 너무나 무서워요. 제발 저를 구출해 주시면 안 될까요? 눈앞에 클리프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저와 함께 이야기해 주었던 그가. 저를 충전시켜 주었던 그가. 저를 지켜준다는 그 당연했던 일마저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에 구역질을 하고선 헐떡였지요.
'배가, 배가 고파. 전기. 전기가….'
죽음에 다다르는 공포와 끔찍함이 온 신경과 세포로 전해집니다. 모든 전선이 하나씩 붕괴되는 느낌. 졸리고도 갈증 있는 느낌. 점차 제가 욕망에 지배당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아니-본능이겠죠.
눈앞엔 죽어가는 로봇 한대가 보였습니다. 신음마저 낼 수 없는 그 로봇. 간절한 심경으로 삶만을 유지하는 그 로봇. 너무나도 처절하고 안타까운 모습이었지만, 제 눈에 그따위 것이 들어올 리 없었죠. 저는 그에게로 달려들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 수차례나 저를 밀어내었으나, 저는 한 손으로 가슴을 미친 듯이 가격했습니다. 결국 가슴이 파이고 배터리가 보이는 그 로봇은 고통과 슬픔에 악을 써보나, 배터리가 빠지고 그 배터리는 고스란히 제 손에 들어옵니다. 이제는 움직일 수조차 없겠죠. 할 수 있다면 장례라도 치러줬으련만, 이런 배터리 상태로는 여기서 밤을 버틸 수 없습니다. 아직 새벽은 멀었고, 초저녁에 날씨가 너무나 쌀쌀했거든요. 이대로 새벽이 오면, 달이 저를 집어삼키겠죠.
얼마 온 것 같지도 않은데, 정처 없는 여정을 떠나다 보니 다시 죽을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제 주저앉아버렸어요. 배터리는 과열되어서 쿨러를 돌릴 기력도 없었죠. 인간으로 따지자면, 숨을 쉴 기력도 없는 그 느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여름의 눈처럼 녹아 없어집니다. 희망이 없다는 걸 알아내서 더 빨리 안식할 수 있기를. 신이시여. 아-신이시여. 제게 운명을 알려주시옵서서. 사실 포기는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또 외치기를, 제발 제게 힘을 주소서. 죽지 않을 기력을 주소서. 사실 그 신이 인간이든 뭐든 상관없었으니까요.
지렁이. 지렁이다.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 땅 속의 배설물을 행복하게 뜯어먹는 저 지렁이. 저거다. 저거야. 난 살 수 있을 거야. 전 광인처럼 눈을 부라렸습니다. 노려본 대상은, 뭐-지렁이였죠. 이 이야기는 좀-뭐랄까. 끔찍한데요.
저는 단숨에 지렁이를 쥐었고, 당연하게도 지렁이는 미친 듯이 파닥거렸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계기는 저희의 몸통에 있는데요, 로봇들의 몸통에는 유기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장치가 있습니다. 다음에 나올 이야기는, 뭐 다들 아시죠?
저는 몸통에 그 지렁이를 집어넣었고, 빨간 피의 철퍽임과 함께 죽을힘을 다해 펄떡거리던 지렁이는 이내 곧 희망을 잃은 듯 잠잠하게 제 운명에 몸을 맡겼습니다. 이때는 그나마 이성이 돌아왔던 때라 두 손을 모으고 가볍게 기도를 한 뒤에 길을 떠났죠.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죽였습니다.'
다리가 돌아버리게도 아파요. 당장이라도 그냥 쓰러지고 싶은데.
조금 더 걷다가 보니, 망가진 도시의 어느 벽에 무언가가 쓰여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망가진 도시에 있는 물건이라기에는 너무 깔끔한 전단지였는데… 뭘까요? 사람? 사람의 흔적인가? 그럼 저는 죽겠죠. 두려운 마음으로 전단지를 읽어나갔어요.
'로봇을 위한 세상. 인간이 없는 세상. 정처 없는 로봇의 세상. 이곳에 있습니다. (왼쪽으로 300미터, 뒤로 100미터쯤의 바닥 문) *만일 수거를 당할까 무서우시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전단지는 수거일마다 걷어서 모두 괜찮습니다.'
제가 온 방향의 정 반대방향이었습니다. 딱 그곳만 지나지 않았는데. 저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는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불평하지는 않았어요. 전단지를 찾았다는 것. 골목이 실존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거든요. 그때가 되어서야 살 이유를 찾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생이 아름다워진 느낌. 새 시작을 건네받은 느낌. 짜릿하고도 행복했어요.
그곳의 땅을 보니, 목재로 된 작은 문이 붙어있었어요. 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여니 석재로 된 원형 계단이 보였으나, 그 아래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명은 있을 리가 없었으며, 제법 더러웠어요.
'이곳이 정말 골목인가?'
계단을 내려가니 으슥한 길이 보였습니다. 별 로봇은 없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제 눈에 들어오는 저 불빛 하나. 저 불빛은 무엇일까요? 끝에 가서 코너를 도니, '로봇들의 낙원. 악의 유토피아이자 독사의 낙원.' 골목이 보였습니다.
'장관이네.'
빛나는 네온은 제 눈을 덮쳤고, 빽빽하게 들어온 상점이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골목에 들어온 순간부터 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왜냐고요? 이곳에서 보일 시작이 눈에 아른거렸거든요. 중앙 건물에서는 많은 로봇들이 거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마치 모두가 제 무사도착을 축하해 주는 듯이. 낡고 허름하지만, 경의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수많은 로봇들과 길거리 상점들은 설교빛과 소리에 비쳐 전율을 자아냈고, 저는 전율에 취해 감동적이고도 울적한 마음을 만끽하고 있었어요. 어떤 로봇 하나가 길의 끝에서 걸어왔습니다.
길은 제가 온 곳의 반대방향이었습니다. 아마, 밖에서는 그저 절벽으로 보일 거예요. 교회에 있던 로봇들은 그를 보며 웅성거렸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길거리로 뛰어나오고는 그 로봇을 껴안았어요. 물론, 저는 그가 누군지도 몰라서 지켜보기만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