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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서 Sep 11. 2024

03. 배우자의 외도 증거를 찾는 일

Before 이혼/ 배우자의 외도에 무너지지 말자


낌새가 이상했다. 집돌이 스타일로 주로 집에만 있던 사람이 밖으로 도는 것이 낯설었다.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하이패스 충전 요금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대화 없이 지내는 3개월 사이, 이 남자는 무엇을 하느라 집에 오지 않는 것일까?


상상에 끝에 생각나는 단어는 이것뿐이었다.


외도

정말 그가 외도를 하는 게 맞을까?


에스터 페렐은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 하지 않는 것들'에서 '불륜'에 대한 이전의 시각과 다른 통찰을 보여준다. 세계 각국에서 오랜 시간 상담해 온 사례를 통해 외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배우자의 외도를 극복하는 커플보다 상처받고 헤어지는 커플이 훨씬 많기는 하지만, 부부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며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외도의 이유에 대해 대화를 하고 갈등의 방법을 찾은 부부들은 오히려 더 관계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부부가 더 많이 대화하고 서로 노력을 하면 '불륜'에도 불구하고 부부 관계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책과 인생은 달랐다. 글자로 익힌 간접 경험과 내가 겪은 직접 경험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블랙박스를 통해 남편이 어디에 사는 누군가와 자주 만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이후로 생각은 건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았다. 일주일간 불면증으로 잠을 자지 못하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

직접 그녀를 만나야 한다

목표는 오직 그것 하나.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경험인데 해결을 도와줄 매뉴얼이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삐뽀삐뽀 경광등이 울리는데 한가롭게 책이나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떠오르는 단어들을 검색했고, 대한민국 외도 카페, 이혼 카페는 죄다 뒤졌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많이 놀랐다. 이렇게나 많은 부부들이 참 다양한 버전으로 외도를 하며 사는구나.


전문가와 경험자들의 충고는 오직 하나였다. '외도의 증거를 찾아라!'

이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외도의 증거를 찾아 외도하는 남의 편을 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결혼을 위해서인지 이혼을 위해서인지 목적은 알 수 없으나 나도 그들처럼 외도의 증거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마음이 떠나면 그만이고 결국은 알게 될 일인데, 왜 성급하게 확인을 하려 들까.' 고민했지만, 블랙박스를 보고야 말았다. 영상을 보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힌트를 얻었다. 가게 이름, 얼핏 보이는 지하철 역. 간판의 전화번호. 차가 들어가는 아파트 입구. 사건의 단서를 찾아내는 탐정처럼 찢어진 조각들을 이어 붙였다. 어려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자주 드나드는 아파트는 찾았지만 그녀의 집은 알 수 없었다.


 '어디에 사는 누군가'를 찾아내는 일은 무척 어려워서 전문가들은 사람을 붙여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언니들과 친구의 도움으로 정확하게 그녀를 찾았다. 혼자라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함께 해준 그녀들이 고마웠다. 이혼하고 나니 증거를 찾는 일이 나은 것인지, 아니면 불가능해서 덮어 버리는 게 낫았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남들에게는 뻔해서 재미없는 드라마일지 몰라도, 나에게 상간녀를 만나는 과정은 007 영화보다 버라이어티 했다. 잠을 전혀 자지 못해서  쓰러질 것 같았고, 하루아침에 머리가 하얗게 세듯 갑자기 기미가 얼굴 가득 피어올랐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 매뉴얼대로 했다는 이상한 성취감만이 위로가 되었던 시간이다.


외도의 증거를 찾는 일

배우자가 외도를 했다면?이라고 주변에 질문을 던졌을 때, 결혼생활의 파고가 높았던 언니는 파헤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며 그냥 묻겠다는 언니들이 대다수였다.  살다 보니 외도를 한 것 같은 정황이 있기도 했으나 넘긴 적도 많았다는 언니도 있었다. 외도를 알고 난 이후 가족의 변화가 무섭다고 했다. 무언가 결정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그 결정이 두렵다고 했다.


나는 왜 초 스피드로 외도의 증거를 찾으려고 했을까? 성격 탓이었다. 지지부진한 결말이 싫어서. 뭐든 깔끔한 게 좋아서. 의심은 시작되었는데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일이 더 괴로울 것 같아 실체를 마주하는 것이 속이 편할 거라고 결론 내렸다. 어쩌면 겁이 많아서였던 것도 같다.


하지 않은 남자는 있어도 한 번 한 남자는 없다는 외도,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데 아무 준비 없이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 빨리 움직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사는 동안 한 번의 의심도 해본 적이 없는 남편이 가족을 깨버리려 한다면 생각 이상으로 비참할 것 같았다. 지나서 돌이켜 본 것일 뿐, 위기에 몰린 짐승이 살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처럼,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했던 '자기 방어'였다.


외도를 알게 된 직후의 시간들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여서 그랬을까?  몇몇 장면들은 영화 속 장면처럼 생생하게 남았지만, 맥락이나 감정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의 옷이라거나 얼굴 표정은 꽤나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정서적 기억은 흐릿하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인생사 별 것 아니더라. 시간이 흐르면 다 괜찮다더라." 유행가 가사 같은 교훈만 남았다. 상처가 흉터로 남긴 했는데 그 흉터가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배우자가 외도를 해서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맞이하는 부부들이 있을 것이다. 온라인에서 살펴보니,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하는 경우들도 많다. 마치 습관처럼. 어느 심리상담가의 글에서 '배우자의 외도는 성폭행의 고통과 맞먹는다'라는 글을 읽고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과도한 비유다. 성폭행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것 같은데, 배우자의 외도는 그렇지 않다. 그만큼의 고통은 분명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흐르니 배우자가 이해도 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 그의 영혼이 안쓰러워지기도 한다. 지나고 나면 이해 못 할 은 없다. 그를 '외도'라는 상황으로 몰고 간 건 '나'라는 판단에 심지어 미안하다.


현재가 너무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에 있다고 해도 너그러운 시선으로 여유를 가지고 나부터 도닥이는 것이 먼저이다. 증거를 찾거나 묻는 일은  개인의 성격과 성향일 뿐이다. 증거를 찾지 못해서 의심이 깊어져서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고,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일을 알고 나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도 있다.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하더라도 나의 자존감을 땅바닥에 처박으면 안 된다. 부부관계란 남녀사이의 일이라서 상대방의 외도는 분명히 자존감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나는 그에게 형편없는 여자라는 자괴감, 자존감의 추락은 상상이상으로 괴롭다.  성적 끌림으로 만나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나와 다른 사람에게 끌려서 외도를 했다는 것은 '성 자존감'에 어퍼컷을 날리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부들부들 떨리는 모욕도 당하고 자존심도 상해가며 세상살이를 하지만 가장 밀접한 이성으로부터의 거부는 원초적인 상처로 남는다.  


외도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후 오히려 더  부부 관계를 원하는 커플도 있다고 한다. 자존감만큼은 회복하고 싶은 몸무림 때문일지도 모다. 남녀 간의 성적 문제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자존감이 지하로 떨어지는 헤비급 상처를 입은 상태. 그 상처를 더 헤집지 않는 것이 낫다.  나에게 상처를 준 상대방의 관점에서 사고하지 말고,  관점의 중심을 나로 바꾸자.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니!"

 '너'란 인간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상처 입은 '나'를 생각하자. 나를 위해 증거가 필요하다면 증거를 찾고, 상담이 필요하다면 상담을 하면서 배우자가 아닌, 나를 위한 판단과 선택이 필요하다.

외도를 겪고 이혼 한 이혼녀로서 조언을 달라면


까짓 거 무너지지 말자.
무너지면 어떠냐고?
그 정도면 무너져도 되는 것 아니냐고?

그래, 그럼

얼른 털고 일어나자.



쿨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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