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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서 Sep 10. 2024

01. 이혼하는 사주

Before 이혼


이혼하는 사주가 있을까?



어려서 가끔 엄마가 사주를 보러 가면, 나는 결혼을 늦게 해야 한다고 했다. 20대에도 사주에 관심이 있어서 책을 보긴 했으나, 왜 결혼을 늦게 해야 하는 사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주는 틀린 거라고 생각했다. 늦게 결혼하라는 의미는 일찍 결혼하면 실패할 수 있다는 간접 표현인 경우가 많은데, 스물여섯에 결혼해서 아들 둘 낳고 남편과 알콩달콩 사이좋게 잘 살고 있었다. '사주는 틀렸다니까!'  사주를 비웃었다. 바로 내일 일도 모르는 사람의 일을 재단하는 운명학은 가까이할 것이 못된다고 여겼다. 그때는.


이혼은 계획된 일이 아니었는데 오래전 예언이 먼 훗날 사실로 증명되듯,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는 진리처럼 삶의 순서가 되었다. 내 사주를 다시 보았다.

부성입묘 글자가 있으니 일찍 결혼을 하면 이혼을 할 수도 있겠다.

배우자궁을 의미하는 일지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니, 남편이 도움 되는 인생은 아니다.

시지에 편관이 떡하니 있으니 결혼을 일찍 하면, 갈아탈 수도 있겠다.

일지와 시지가 격각이니 이혼을 하고 각자의 삶을 사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 수도 있겠다.

이혼할 무렵 대운도 정관이 입묘 되는 시기이니 이혼이 합당하다 할 수 있다.


결국 이혼할 사주였을까. 나에게 이혼은 운명이었을까. 일어나 버린 일 앞에서 혼란스러웠다.

이혼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다 이혼을 해야만 할까.


사주 감명으로 이혼을 할지 말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사주 원국과 대운, 세운을 살펴 정말 이혼을 할 것 같은 커플도 이혼을 하지 않은 채 남남처럼 살다가 세월이 흐르며 상대에게 적응을 하기도 한다. 엄마가 딸의 사주를 상담하러 가서, 딸이 분명 이혼할 거라고 장담을 듣고 왔는데 위기기 곧 기회처럼 잘 사는 커플이 주변에도 있다. 이혼할 사주라고 해서, 이혼할 시기라고 해서 이혼을 장담하지 않는 이유다.


이혼이 운명처럼 왔다고 해도 누구에게는 일어나고 누구에게는 비껴가는 실재에 대한 해설이 필요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사유를 시작해고, '주인공의 성정'에 있겠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이혼의 원인으로는 사주 원국의 문제인 정편관 혼잡이나 입묘, 대운에서 오는 다른 이성의 접근, 세운에서 오는 충이나 원진, 파, 신살의 작용등이 있다. 흔한 삼재도 이유가 된다.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삼재인데, 묘하게도 삼재 시즌에는 안 좋은 일이  하나는 일어난다. 삼재에 이혼운이 걸리면 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결정과 판단의 몫은 주인공인 '일주'에 있기에 운명은 달라진다.


나는 갑목이다. 전남편도 갑목이다.


갑목은 풍파가 오면 살아남지 못하고 꺾인다. 풀은 눕지만 나무는 쓰러진다. 잡초는 폭풍이 오면 유연하게 넘어가지만 고목은 벼락을 강하게 맞으면 꺾여 버린다. 자존심이 강한 두 갑목, 평소에는 뜻도 잘 맞고 소통도 잘 되지만 위기가 오면 서로 부딪혀 아닌 것을 맞다고 할 수가 없다. 평소에는 인자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도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면 거기서 멈춘다. 자존심은 고집과는 다르다. 용납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숙이지 않는 마음이다. The End.


우리의 궁합을 본 역술가 중에 이번만 넘어가면 문제없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다. 이혼하지 말고 살라고 조언해 주셨지만, 내 의지대로  이혼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갑목의 기질이다. 만약 현실적인 을목이었다면, 사는 동안  부부 사이가 좋았기에 표면적인 실리를 챙기며 부드럽게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사주의 여덟 글자는 복잡해서 일주의 결정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스스로가 판단한 본인의 운명 해설은 일주의 이유다.


타인의 사주 여덟 글자를 살피다 보면 같은 이혼도 다르게 펼쳐진다. 이혼을 할만한 사주라서 이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혼을 할만한 사주인데 떨어져 살면서 넘기는 사람도 있다. 이혼 운이 강하지 않음에도 이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혼을 해야만 앞으로 사는 날들이 평안할 것 같은데 결국은 붙어사는 커플도 있다. 이혼 운이라고 해도, 모두가 이혼하는 것은 아닌 것. 그러니 이혼할 사주라고 어디선가 들어도 너무 놀라 하거나 괜스레 신경 쓰지 말라.


어떻게 보면 평생 한 사람과 사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능에는 맞지 않으며, 인생 주기에도 맞지 않는다. 어떻게 한 사람하고만 평생을 살 수 있냐고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농담 삼아 10년에 한 번씩 결혼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하기도 한다. 사주의 대운도 10년마다 달라지니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자동차에 비유하는 사주는 대운과 세운에 따라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운행할 수도 있고, 가파른 비탈길을 힘겹게 운전해야 하는 시기도 있다. 흐르는 운에 따라 인생이 조금씩 변화듯이 부부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부가 연인처럼 사는 때도 있고, 이별수가 든 것처럼 헤어져 사는 시기도 있다. 그럴 땐 그렇게 살면 된다. 때로는 남처럼. 때로는 그림자처럼.


본인 성격에 따라 이혼을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이혼수가 있을 때, 남편이 멀리 발령 나는 부부도 있다.  부드럽게 넘어가라는 신호다.. 별거를 통해 부드럽게 액땜하고 넘어가라고 하늘이 보살펴 주는 것이다. 사주란 삶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문서의 영향력을 받아 법적 도장을 찍어야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성향에 따라 겪어내면 된다.


나와 남편은 같은 갑목이라 이혼을 하고 나서도 원수처럼 지내지는 않는다.  

나에게 상처를 주기는 했으나,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전남편을 전혀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시기에 공감해주지 못한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미안해하곤 한다. 이혼하고도 감정의 찌꺼기 없이 오랜 친구에게 연락하듯 편하게 연락한다. 이  또한 타고난 성정 문제인듯싶다.


내 사주, 늦게 결혼하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주가 그리 말해도 삶의 대입은 각자의 문제다.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기질에 맞게 선택하면 그뿐이다. 사주를 풀어주는 사람이 내 운명의 키를 쥐고 있지 않다. 그 사람의 방식대로 말할 뿐이다. 타인의 표현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고, 내가 판단하여 내 방식대로 내 인생에 적용해야 한다.


사주의 주인공은 풀이하는 사람이 아니고  태어난 날의 주인공, 바로 '나'이다.

사주는 모르더라도


내 인생, 내가 풀어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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