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찍 카톡이 와 있다. 친정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셔서 새벽에 응급실에 와서 오늘 못 보겠다는 톡이다. 친정 엄마를 보내드린 지난가을, 그 이후 아내 없는 시간이 힘드셨을까. 각종 검사를 해도 원인은 알 수 없는데 혈압이 200으로 높아서 많이 어지러우시단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삶을 비관하셨던 엄마를 돌보느라 힘든 가운데, 시부모님은 혈액암이라 늘 양가 부모님의 건강을 신경 써야 했던 친구. 이번에는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또 병원에 왔다니, 가끔 소식을 듣는 나도 안타깝기만 하다. 바로 곁에서 오랜 시간 어머님 수발을 드시느라 지치셨을 아버지도 안쓰럽고, 양가 부모님의 건강 문제로 더 오랜 시간을 힘들어하는 친구도 안쓰럽다. 편찮으신 아버님보다 일하랴, 공부하랴 바쁜데 병원 모시고 다니느라 기운 빠질 내 친구가 더 안쓰럽다. 친구도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닌데.
오랜만에 친정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실버교통 봉사를 나가셔서 초등학교 근처를 돌고 계신 엄마의 목소리가 밝다. 시간 있을 때 엄마와 점심이라도 먹을까, 했더니 서울에서 모임 약속이 있으시단다. 바쁘게 다니시는 엄마의 목소리가 활기차서 친구와 톡을 하며 암담했던 마음이 펴진다.
대학시절에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알바를 해서 천만 원을 모았다가 졸업할 때 알려 드렸다.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엄마가 서운해하셨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 도움을 주지 않고 모을 수가 있냐는 이야기에 내가 이기적인 것만 같았다. 학비와 용돈을 해결하며 모은 돈은 칭찬의 주제가 아니라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기적인 딸인 건가." 부모님께 미안해졌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나의 졸업기념으로 엄마를 위해 그 당시 가장 비쌌던 무스탕을 사드렸다. 95년도에 초특가 할인을 받아서 60만 원이 넘었으니 꽤나 고급 옷이었을 거다. 그 당시 남자 친구이었던 애들 아빠는 "딸이 고생해서 모은 돈인데, 그 돈으로 부모님이 선물을 받으시는 게 이해되지 않아. 딸이 악착같이 고생해서 모은 그 돈, 나 같으면 못 쓸 것 같은데 왜 서운하실까?" 엄마한테 선물을 드리는 기쁨과 남자 친구의 말 사이에서 나도 많이 헷갈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이해가 된다. 내 나이 스물셋, 엄마는 마흔여덟이었으니까.
결혼을 할 때,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엄마께 사위 한복과 예단만 해달라고 했다. 허례가 전혀 없었던 시어머님은 오고 가는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하자며 이불 한 채만 보내라고 하셨다. 요즘은 침대 생활을 하니 침대보 세트만 보내면 된다 시기에 그렇게 했다. 그릇부터 예물, 모든 가전제품은 내가 마련했다. 아르바이트해서 저축해 둔 돈에, 직장 생활하며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모은 돈으로 모든 제품을 최저가로 샀더니, 나중에는 그릇이 예쁘지 않아 살짝 후회했던 기억도 남아 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아빠 없이 결혼하는 동생이 안타깝다며 동생 전세자금을 보태주셨다. 나에게는 언니노릇으로 신혼집 가전을 맡겼다. 텔레비전에 냉장고 세탁기까지 모두 준비하려니 부담이 되어서 좋은 제품으로 해주지는 못했다. 아직도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아들 둘을 키우며 아파트 대출금 갚으면서 엄마의 생활비까지 대고 있는 나로서는 남편에게 차마 다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서 돈을 마련하느라 더 버거웠다. 두 분 다 일하시는 시부모님께는 최소한의 용돈만 보내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후, 경제생활을 하지 않아서 도와드려야 하는 엄마도 미안한 마당에 동생 결혼비용까지 솔직하게 말하기에는 양심이 없어 보였다.
동생의 결혼에 한몫을 해야 한다고 이성적으로는 생각했지만, 속이 좁은 마음에는 응어리가 남았을까. 엄마가 조금씩 미워졌다. 아니, 그보다는 대학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해결하며 혼자 힘으로 대학을 다녔는데, " 언니가 동생 등록금 한 번은 내야지"라는 엄마의 말에 속이 많이 상했었던 것 같다. 바라는 것 없이 그저 도와주려는 아빠와 달리 딸로부터 받는 걸 좋아하는 엄마가 점점 부담스럽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엄마에게만 말투가 쌀쌀맞아졌다. 엄마는 내가 어려서부터 그랬다지만, 쌀쌀맞고 냉정한 엄마한테 치대며 애정 표현을 했던 사람은 분명 나였다. 야단맞을 일이 아닌데도 엄마 기분이 나빠서 야단맞고 나면, 동생은 엄마가 사과할 때까지 방문을 닫고 버텼지만, 나는 속도 없이 엄마한테 먼저 가서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라며 들러붙었던 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가 불편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먼저 사과하고 달래주는 것이 속이 편하니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먼저 사과하고 마는데 화를 내고 꽁해있는 것이 힘들어서 언젠가부터는 삐지는 일도 없는, 무심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도 참 이상하지, 엄마한테는 예외였다. (한 명 더 있어서 큰 아들한테도 예외지만.) 아주 쉬운데도 설명을 요구하거나 부탁을 하면 핀잔을 주는 내가 느껴졌다. 그런 내 모습에 깜짝 놀라서 반성한 후에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살가운 딸들처럼 엄마를 최우선으로 살펴드리지는 않는다.
이혼하고는 나도 힘든데, 엄마는 여전히 동생만 안쓰러워했다. 큰 딸은 이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행복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 너 만큼만 살면 걱정이 없겠다." 엄마의 말버릇이었다. 10년 넘게 경차를 타다가 이 나이에도 경차로 바꾸었는데도 " 에효, 동생도 차가 낡아서 바꿔야 할 텐데." 라며 나를 축하하기보단 동생의 처지를 아쉬워하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익숙할 만큼 익숙해서 신경도 안 쓰지만, 그래도 가끔은 투덜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엄마, 나도 힘들 때가 있어요."라고.
언젠가부터 엄마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엄마 마음이 알아졌다. 나도 자녀가 성인이 되며 나이가 든 이유다. 날이 섰던 말투도 조금씩 부드러워졌고, 생전 딸에게 전화라고는 하지 않는 엄마에게 항상 먼저 전화드리며 챙기려고 애쓴다. " 엄마, 별일 없어요? 아픈 데는 없고?"
아픈 데 없는 엄마, 아프더라도 바쁜 딸들 신경 쓸까 봐 혼자서 씩씩하게 이겨내는 엄마가 이제는 고맙다. 가끔은 시원시원하시던 엄마가 왜 이리 답답한지 덩달아 나도 답답해지곤 했는데, 그건 엄마 탓이 아니라 세월 탓이란 것을 알았다. 팔순이 되어가면 세상은 감당하기에 너무 커져 버리고, 노인은 점점 쪼그라진다. 나도 그런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엄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씩씩하게 서울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고, 친구와 재미나게 영화를 보는 엄마. 푼 돈이라도 벌겠다고 실버 일자리를 알아보며 학교 앞에서 녹색도우미를 하는 엄마 덕분에 장녀는 편하게 지낼 수 있다. 편찮으신 엄마 모시고 병원 다니느라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픈 엄마를 놔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서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제야 '내 삶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탐색을 시작했다. 처음 맛보는 인생의 여유로운 시간이 좋아서 이십 대의 나보다 오십 대의 내가 훨씬 즐겁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오직 나만 책임지면 되는 현재가 홀가분해서 좋다. 어깨에 짊어진 짐을 벗고 나니 힘껏 뛰어도 힘이 들지 않는 기분이라 마냥 행복하다. 오직 나만 책임져도 되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는 흔하지 않았기에. 이런 시기를 엄마의 병간호로 보낸다면 내 인생이 억울할 것 같다. 나도 이젠 즐기면서 살고 싶거든.
언젠가 엄마를 모시고 병원 다닐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엄마의 건강을 고민하며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방황할지도 모른다. 현실과 양심, 책임감과 경제적 이유 사이에서 회피형 선택을 내리며 자책하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 이미 친구와 언니들의 간접 경험을 자주 들어서인지 생각만 해도 겁이 난다. 아이는 내 아이라서 어떡해서든 키웠지만,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온도부터 차이가 날 것 같아, 벌써부터 내 양심이 의심스럽다. 나쁜 딸일까 봐 무섭다.
즐길 나이에 즐길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엄마가 고맙다. 어쩌지 못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해야 하는 시기가 언젠가는 올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이 없도록 건강관리를 잘하는 엄마가 많이 고맙다. 다달이 챙겨드리는 영양제로 내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해주는 엄마가 내 엄마라서 행복하다. 엄마가 오래오래 아프지 않고, 지금처럼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마음껏 다니시며 즐겁게 사시면 좋겠다. 엄마의 자유로움이 나의 행복임을 절실하게 깨닫는 요즘이다.
오늘 사드리지 못한 밥은 시간을 내어 꼭 사드려야겠다.
좋은 소화제도 가져다 드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