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률 콘서트에 가는 이유
김동률 콘서트에 가는 이유
김동률은 우리 시대 아이콘이다. 우리의 한 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로 건축학개론을 꼽는다. 영화의 퀄리티는 잘 모르겠다. 모든 장면마다 공감한 것도 아니다. 영화에 등장했던 김동률의 노래를 CD플레이어로 듣는 장면이 나의 한 때라서 유난히 잊히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건축학개론과 김동률의 음악은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김동률 팬은 아니다. 김동률의 신곡 소식에 찾아서 듣기는 하지만, 그의 모든 노래를 알지 못한다. 노래방에 가면 흔하게 들려오는 멜로디를 기억하며 흥얼거리는 정도다. 앨범에 숨은 명곡이 어떤 노래인지, 가사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깊게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다. 그냥 들으면 좋았다. 좋은 풍경을 보듯 그렇게
그럼에도 김동률 콘서트는 꼭 간다. 18년을 시작으로 19년, 23년을 지나 올해 콘서트까지 함께 했다. 김동률 콘서트를 가지 못하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챙겼다. 한 때 올공을 하겠다며 모든 콘서트 티켓을 구했던 '덕주'의 콘서트와 공연은 이제 관심에서 잊혔는데, 김동률 콘서트는 아직도 열망이 강렬하다. '하현우'의 '국카스텐' 공연을 가기 위해 당일로 부산을 다녀오거나, 뮤지컬 배우 고훈정을 만나기 위해 같은 작품을 10번씩 보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 그들의 공연을 따로 챙기는 열정은 사라졌다. 50대가 된 이후, 저조한 나의 문화생활이 떠오르면 임영웅 콘서트에 가시는 어머님들이 존경스럽다. 티켓팅 때문에 밤 잠을 설치던 그때는 과거가 되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잠실에 공연 보러 가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현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률 콘서트는 꼬박꼬박 가야 한다는 의지로 티켓팅에 참전한다. 잠실까지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넘는 긴 이동을 해낸다.
김동률 콘서트가 특별해서일까? 맞다. 무척 특별하다. 처음 가본 사람은 잘 모를 수도 있겠다. 김동률의 히트곡, 우리 시대 명곡을 라이브에서 듣고 싶다거나, 사랑하는 애인이 열망해서 덩달아 콘서트를 찾았더라도 반복해서 그의 공연에 가면, 팬심과 상관없는 김동률 콘서트의 '특별함'을 알게 될 것이다.
김동률, 그는 지독하게 완벽한 사람인가 보다.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혹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협연 공연을 갔을 때 느끼게 되는 감동을 그의 공연에서 발견한다. 클래식이 아닌 한국 대중 가수의 콘서트일 뿐인데 정명훈 + 조성진의 조합을 기대하는 마음과 같다. 유명한 음악가의 공연만큼이나 만족스러운 경험 때문이다.
그의 성대가 완벽하긴 하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철저한 준비로 만들어냈을 것 같은 최고의 연주와 밴드의 완벽함에 '최선'을 증명하는 김동률의 노래 조합이 한국 대중 가수의 콘서트에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놀라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BTS 콘서트 제외!^^) 슈퍼 J라서 1년 전부터 준비한다고 생각했는데, 국내형 가수가 이 정도 수준의 개인 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의 준비 기간의 필요할 것 같긴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완벽한 조합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지휘자의 멋진 손짓을 따라 다양한 현악기와 관악기가 어우러진 오케스트와 연주와 더불어 기타리스트가 몇 명인지 대형 화면으로는 세기도 어려운 많은 기타리스트와 다양한 악기 연주자들이 만들어 내는 멜로디와 리듬은 2만 명이 수용하는 (아무리 음질이 좋다고 해도 울림이 있을 수밖에 없는 ) 경기장임에도 불구하고 끝내준다.
김동률의 음악 장르는 발라드이다. 발라드는 한 장르인 줄 알았다. 무식했다. 발라드라는 음악 영역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인이 좋아하는 발라드 가요 안에, 얼마나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는지 그를 통해 알았다. 김동률의 노래가 비슷비슷하다는 섣부른 인상을 가졌다면 착각이다.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없는 음악 문외한에게도 김동률이 만든 노래들은 스펙트럼이 넓게 느껴진다.
그의 노래에는 피아노 반주에 독특한 중저음이 빛나는 독주곡도 있고, 악기의 연주가 조화로운 관현악도 있다. 정통 클래식처럼 묵직한 멜로디도 있고 섹시하면서 매력적인 탱고도 있으며, 착 감겨서 좋은 재즈도 있다. 이번에는 뮤지컬도 욕심을 냈는지 뮤지컬 넘버처럼 꾸민 무대도 있었다.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착실하게 가수와 호흡을 맞추는 밴드팀과 보컬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톡톡 튀는 일렉 연주 밴드팀이 양쪽에서 김동률을 서포트한다. 거기에 무대장치부터 콘셉트까지, 1년이란 긴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만 가능해 보이는 '핸드 메이드 감성'이 완벽하다.
발레 '지젤'이나 '호두까기 인형'을 보듯, 시각과 청각의 조화가 아름다운 종합 예술을 경험하는 만족감과 더불어 시대가 되었건 세대가 되었건 '내가 통과했던 그 시절'을 증명하듯 함께 공유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같은 여행지에서, 오직 그 장소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해야만 알 것 같은 '특별함'을 그의 콘서트에서 맛보곤 한다. 그래서 김동률 콘서트가 자꾸 가고 싶은가 보다.
솔직하게 이번 콘서트는 2년 전과는 달랐다. 처음 김동률 콘서트를 갔을 때처럼의 설렘은 줄었다. 어쩌면 힘든 티켓팅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했다. '이제 그만 와도 되지 않을까?' 콘서트를 보면서 달라졌다. 동행한 언니가 이야기했다. "계속 와야 하지 않겠냐?"
오프닝 무대는 2008년도에서 시작해서 시그니처가 된 ' 사랑한다는 말'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믹싱 버전으로 출발했다. 그 후 들려준 그의 노래는 '망각', '하소연'처럼 관심 있는 팬이 아니라면 처음 들어본 곡들도 있었다. '동화', '모험', '걱정'도 많이 들은 노래는 아니었다. 옆에 앉은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노래를 다 따라 부를 정도로 가사를 완벽하게 숙지하셨던데, 나는 대표 히트곡이 아니라면 떼창은 불가. (김동률이 취중진담 떼창을 시켜서 고마웠다.^^;;) 매진된 콘서트에 1층을 차지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정도로 노래를 잘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 느낌이 나는 노래는 그 느낌대로, 탱고 리듬은 또 그 버전대로 즐기며 들었다. '황금가면'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김동률의 댄스도 볼 수 있었다. 앙상블팀을 섭외해서 만든 무대는 뮤지컬 무대 같았다. 동화였나. 동화 느낌을 위해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으로 직접 그림을 그려 꾸민 무대장치도 예스러운 감성이 고급스러웠다. 화려한 디지털보다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더 감동을 주긴 하는가 보다. 찰나의 감성이지만 투박하면서 단순한 그림의 질감이 유독 좋았더랬다. 김동률이 그랬다. '디지털 그림보다 수작업 그림이 더 단가가 비싸다'라고. 그래도 김동률은 '손 맛'을 선택했다. 그가 추구하는 콘서트가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가장 큰 변화는 김동률이다. 그동안 공연에서 그는 분명 말이 거의 없는 아티스트였다. 23년 콘서트 멜로디에서도 몇 마디 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딱 할 말만 했다. 이번엔 달랐다. 이렇게 말이 긴 적이 있었던가? 싶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적응이 되질 않았다. 늘 짧아서 아쉬웠던 그의 멘트였는데, 이렇게 길어도 되나? 지켜보는 내가 낯설어서 중간에 커트하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당황한 만큼 재미도 있었다. '말을 참 재밌게 하는 아티스트구나, 어떻게 숨기고 살았지? ' 긴 설명에 궁금함이 피어올랐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체로 알 것 같은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사랑한다는 말', '내 사람', '산책', '시작', '새' , '취중진담' 부터잘 모르는 '고백', '희망', '하소연', '망각'까지 다양한 음악을 풀 오케스트라 연주로 구현된 완벽함을 만났다.
마지막, #전람회 멤버이자 김동률의 절친이었던 #서동욱을 기리는 무대가 있어서 눈물이 났다.
'산책'은 서동욱을 위한 노래였을까. 노래 가사 중 '같이 걷자 했잖아'가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바쁜 친구와 언젠가 함께 운동하고 산책하자고 했는데, 그 약속 지키지도 못하고 친구가 떠나서 만든 노래 같았다. 나는 산책이 셋리중에 제일 슬펐다.
실력은 대한민국 최고지만, 멘트는 '초등학교 전교회장'같은 고상지 님을 만나서 더 반가웠다. 이번엔 탱고 곡이 한 곡 밖에 없는데 세션으로 참여해야 해서, 김동률은 미안한 마음에 인터미션 시간에 고상지 밴드의 무대를 준비한 것 같은데, 부담 없이 한 곡만 하고 싶었던 고상지 님에게는 이 또한 부담이었는지 김동률의 설명과는 다른 느낌을 그녀의 멘트에서 전달받았다. 그 다름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려서부터 김동률 팬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만드는 그녀의 '졸업' 연주는 끝내줬다. 다른 게스트 없이 고상지 밴드의 음악만 들어도 만족스러운 김동률 콘서트이다.
이번에는 섹시한 기타리스트도 특별하게 기억에 남았다. 연주곡이 너무 좋아서 목소리를 얹고 싶지 않았다던 기타 연주에 넋이 나갔다. 그때부터 몇 대의 기타 리스트가 참여한 건지 세어 보려고 노력했는데 제대로 카운팅을 하지 못했다. 아쉬웠다.
4년마다 콘서트를 하면 곧 환갑이 될 것 같아 2년 만에 하게 되었다는 김동률, 작년에는 #이적 콘서트 게스트로 나와서 만났기에 덕질 세계를 떠난 덕후가 유일하게 매년 만나는 아티스티가 되었다. 앞으로 몇 번의 콘서트가 더 있을지, 몇 년에 한 번씩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도 만나기 힘든 콘서트란 걸 잘 알기에 또 와야 할 것 같다. 티켓팅은 점점 어려워서 지고 손끝은 무뎌지지만 최선을 다해 봐야겠다. 한국 대중 가수의 콘서트 중에서 이만한 수준을 가지기도 누리기도 어렵다는 걸 알기에. 말이 없어서 잘 몰랐던 김동률, 이번 콘서트에서 인간적인 매력에 더 매료되었다. (역시, 말은 많고 볼 일이다.)
20대 대학가요제로 데뷔를 해서 처음부터 최고의 자리에 올라 무명 가수 시절을 겪지 않았다는 김동률의 말에서 그의 인품이 느껴졌다. 어리고 젊으면, 특히 그 시대라면, 갑자기 스타가 된 후 달라질 수도 있을 텐데 김동률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다. 자기 길을 확고하게, 꾸준히 갔고 공부가 부족하다며 버클리로 떠났던 기억뿐이다. 다양한 음악을 시도했고, 결과로 승부했다. 어린 나이에 힘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뮤지션의 본분에 충실했다. 변함없는 그의 진중함과 꾸준함이 더 큰 매력으로 각인되었다. 나이 든 김동률, 늙어가는 김동률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도무지 늙지 않아서 노화는 어울리지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