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관맹상제(寬猛相濟)
7월 14일의 고사성어(196)
관맹상제(寬猛相濟)
* 너그러움과 엄격함을 함께 구사하다.
* 《좌전》
눈으로 읽으며 낭독하기
춘추시대 정나라의 정자산(鄭子産, ?~기원전 약 522)은 마흔 살 무렵 재상이 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나라 국정을 책임졌다. 집권 전반 10년 동안 그는 노예주 귀족 등 완고한 수구세력을 타파하는데 힘을 쏟았다. 충성과 근검을 강조하고 사치에 반대했으며, 토지제도와 군사제도를 개혁했다. 법을 통해 특권을 제한하고 정치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이렇게 해서 작고 보잘것없던 정나라의 국력은 크게 높아져 나라의 위상도 높아졌다. 그 후 정자산이 병이 나자 후임 자대숙(子大叔)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죽으면 그대가 정치를 맡게 될 것이 틀림없다. 덕 있는 자만이 너그러움으로 백성을 따르게 할 수 있다. 그다음은 엄격함으로 대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불이 뜨거우면 백성이 이를 보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불 때문에 죽는 자는 드물다. 물이란 약해 보이므로 사람들이 업신여겨 물장난을 하다가 죽는 경우가가 많다. 그러므로 너그럽게 다스리는 것이란 어려운 일이다.”
정자산은 백성을 통제함에 있어서 지나치게 엄해도 지나치게 너그러워도 좋지 않다고 했다. 지나치게 엄격하면 인민들이 무서워하고, 지나치게 너그러우면 게을러지기 쉽다. 자산이 세상을 떠난 다음 집권한 자대숙은 ‘엄격함’을 버리고 ‘너그러움’으로 정치를 했는데, 사회가 이내 혼란에 빠지고 도적이 벌떼 같이 일어났다. 그는 그제야 엄격하게 다스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정자산은 정치의 일반적 방법으로서 ‘너그러움과 사나움을 함께 구사하라’는 ‘관맹상제’를 제시했다. 그럼에도 자산은 정치의 최고 경지는 물과 같은 너그러운 정치라고 보았다. 다만 큰 덕과 포용력 그리고 인품을 갖춘 사람만이 그런 정치가 가능하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손으로 써보며 생각하기
* 관맹상제(寬猛相濟)
* 유튜브 ‘김영수의 좀 알자 중국’: 하루 명언공부 7월 14일
- 등용문(登龍門)
- 용문에 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