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박학이독지(博學而篤志),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1월 16일의 고사성어
박학이독지(博學而篤志),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 두루 배우되 뜻을 도타이 하고, 절실히 묻되 나 자신에 견주어 생각하라.
* 《논어》 <자장>
눈으로 읽으며 낭독하기
공자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인 자장(子張, 기원전503~?)은 “두루 배우되 뜻을 도타이 하고, 절실히 묻되 나 자신에 견주어 생각하라”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하면 “어짊[仁]이 그중에 깃든다(인재기중의仁在其中矣)”라 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공부[學]와 생각[思]은 없어서도 안 되고 치우쳐서도 안 된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강조하는 ‘이성인식(理性認識, rational understanding)’이라는 것이다.
공부와 생각이 관계에 대해 《예기》 <중용> 편에서는 ‘널리 배우는’ ‘박학(博學)’과 ‘신중하게 생각하는’ ‘신사(愼思)’를, 사마천은 ‘배우길 좋아하는’ ‘호학(好學)’과 ‘깊게 생각하는’ ‘심사(深思)’를 강조했다. 자장과 <중용>은 그 사이에 각각 ‘절실하게 묻는’ ‘절문(切問)’과 ‘살펴서 자세히 묻는’ ‘심문(審問)’이란 단계를 두었다. 자장이 말한 ‘나 자신을 견주어 생각하라’는 남을 생각하기에 앞서 나의 언행부터 먼저 생각하라는 뜻이다. ‘근사’는 훗날 주자학(또는 신유학)의 입문서로 불리는 《근사록(近思錄)》의 제목이 되었다.
《예기》에서는 또 “박학이불굴(博學而不窮), 독행이불권(篤行而不倦)”이라고도 했다. “널리 배우되 끝이 없어야 하고, 진실하게 행동하되 피곤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부와 실천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공부가 행동을 지시하고, 행동은 또 다른 단계와 차원의 공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그래서 이 구절 바로 다음에 “혼자 있어도 음탕해서는 안 된다”는 대목이 따라 나온다.
선현들은 또 물음을 강조했다. ‘절문’이 그것인데, 이 물음은 의문(疑問), 또는 의심(疑心)과 통한다. 그래서 주희(朱熹, 1130~1200)도 육구연(陸九淵, 1139~1193)도 모든 배움에는 의문 품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육구연은 이렇게 말했다.(《육구연전집(陸九淵全集)》)
“학문을 함에 있어서는 의문이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의문을 품으면 진보한다. 작게 의문을 품으면 작게 진보하고, 크게 의문을 품으면 크게 진보한다.”
“위학환무의(爲學患無疑), 의즉유진(疑則有進), 소의소진(小疑小進), 대의대진(大疑大進).”
‘박학’은 평소 공부의 누적이다. 또한 어떤 정해진 틀을 고수해서도 안 된다. 명확한 목표와 예리를 안목을 요구한다. 끊임없는 배움[學]과 실천[行]을 강조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 자장이 말한 ‘절문’과 ‘근사’, <중용>이 제안한 ‘심문’, 사마천이 말하는 ‘호학’과 ‘심사’ 그리고 여러 학자들이 말한 ‘의문’이 함께 해야 한다.
손으로 써보며 생각하기
* 박학이독지(博學而篤志),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 박학이불궁(博學而不窮), 독행이불권(篤行而不倦).
* 위학환무의(爲學患無疑), 의즉유진(疑則有進), 소의소진(小疑小進), 대의대진(大疑大進).
* 신사(愼思)
* 호학심사(好學深思)
* 하루 명언공부: 1월 16일 ‘시부지(時不至), 불가강생(不可强生) - 때가 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자라게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