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읽으면 여한이 없을 한비자
내란 수괴, 다른 말로 역적 수괴가 마침내 체포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이 수괴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술이다. 마침 이번에 낸 <한번만 읽어면 여한이 없을 한비자>란 책에 술 관련 일화가 있어 소개해본다.
자반과 곡양, 술과 핑계
사사로운 묵계(默契)와 묵인(默認)의 후과
이 이야기는 기원전 575년 춘추시대 중기에 일어난 사건의 하나이다. 《한비자(韓非子)》에는 <십과>와 <식사> 두 편에 기록되어 있다. 이야기 전부를 소개하긴 번거롭고, 그 내용을 모아서 정리 요약해본다.
기원전 575년, 남방의 강국 초나라의 공왕(共王)과 무장인 사마자반(司馬子反)은 대군을 이끌고 전투에 나섰다. 군대는 언릉(鄢陵, 지금의 하남성 언릉 서북)에서 북방의 강자 진(晉)과 대치했다. 자반은 평소 심하게 술을 탐하는 사람이었다. 공왕은 출전에 앞서 거듭 술 조심을 당부하는 한편 자반 주위의 신하들에게 감시를 명령했다.
두 나라 군대는 접전을 벌였고, 서로 승패를 주고받는 등 좀처럼 승부가 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반은 막사에서 진나라 군대를 물리칠 대책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자반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았다. 자반을 곁에서 모시는 곡양(谷陽)은 고민에 빠진 장수를 보고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곡주(穀酒)를 올렸다. 자반은 눈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술 아니냐?”라고 물었다. 곡양은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는 공왕에게 일러바칠까봐 일부러 “술이 아니라 매운 산초탕입니다”라고 둘러댔다. 순간 자반은 곡양의 말뜻을 알아채고는 단숨에 산초당, 아니 술을 들이켰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꿀맛 같았고, 자반은 자제력을 잃고는 연거푸 산초탕, 아니 곡주를 여러 잔 마셨다. 곡양은 공왕의 경고를 들은 여러 시종들이 보는 앞에서 큰 사발로 곡주를 여러 사발 자반에게 바쳤다.
이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술에 취한 자반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전투 초기 상황으로 돌아 가본다. 사실 이 전투에서 초나라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뿐만 아니라 공왕은 진나라 장수 위기(魏琦)가 쏜 화살에 눈까지 맞았다. 공왕은 수치심을 견디며 명사수 양유기(養由基)에게 화살 두 발을 주며 자신의 눈을 쏜 자를 반드시 쏘아 죽이라고 했다. 양유기는 단 한 발로 위기를 죽이고 남은 한 발을 공왕에게 바침으로써 공왕의 복수에 성공했다.
자반이 술에 취한 사건은 바로 이 다음에 일어났다. 공왕은 반격을 위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자반을 불렀다. 자반은 이미 만취한 상태였고, 당연히 공왕의 부름에 나가지 못했다. 아니 일어나지도 못했다. 화가 난 공왕은 군대를 이끌고 철수해버렸다. 남아있던 양유기는 술에 취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자반을 밧줄로 묶은 다음 뒤 이어 철수했다. 일행은 200리를 행군했고, 그제야 자반은 술에서 깼다.
자기 때문에 일을 그르친 사실을 안 자반은 “곡양이 나를 죽이는구나!”며 통곡했다. 공왕은 사람을 보내 모두가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반을 나무라지 않았다. 자반은 공왕의 숙부였다. 그러나 자반과 사이가 좋지 않던 영윤(令尹) 자중(子重)은 자반에게 군대를 잃은 사람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 모르냐며 자반을 추궁했다. 자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왕이 사람을 보내 자반을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곡양이 자반에게 술을 바친 것은 군주의 명령을 어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투까지 그르치게 만들었다. 여러 책들이 이 일을 기록하면서 ‘작은 충성이 큰 충성을 해친다’는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곡양이 어떻게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반에게 술을 바침으로써 ‘작은 충성’을 실현할 수 있었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곡양의 이 ‘작은 충성’이 가능했던 핵심은 ‘탕’이라는 이름을 빌려 ‘술’이라는 실제를 바쳤다는데 있다.
모든 사물에는 그에 상응하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이름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자고 약정한 것이다. 따라서 그 사물 자체와 그 속성은 본질적인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곡양은 객관적 사물의 ‘이름’과 ‘실질’을 나눌 수 있다는 성질을 이용한 것뿐이다.
술을 목숨처럼 여기는 자반에게 술이 필요할 때 곡양은 그에게 진짜 술을 갖다 주었다. 그러면서 술을 조심하라는 공왕의 명령과 경고를 집행하고 감시하는 신하들을 향해서는 마시는 것에다 ‘탕’이라는 이름을 씌웠다. 자반은 술을 탕이라 부르는 곡양의 심기를 바로 알아챘다. 두 사람은 서로 알아서 자연스럽게 묵계(默契)하고 묵인(默認)했다. 이렇게 해서 좋은 술은 내가 기분 좋게 마시고, 탕이란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대응했다.
자반은 곡양의 핑계를 댔다. 하지만 곡양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자반의 고민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었다. 자반의 심기를 헤아린 곡양은 그래서 이름만 바꾸는 얄팍한 술수로 자반을 만족시켰다. 옛 책들은 이런 행동은 두고 ‘작은 충성’이니 ‘큰 충성’이나 하면서 거창하게 점잔을 뺐지만 그것은 그냥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아부에 다름 아니었다.
또 하나 자반의 음주를 감시하라는 왕의 명을 받은 자들도 그냥 넘길 수 없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왕의 당부를 어겼다. 그들은 ‘탕’이란 이름만 듣고 그냥 그것이 술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왕이 경계하라고 했던 물질의 내용을 조사하거나 감독하지 않고 곡양이 갖다 붙인 이름에 맥없이 속아 넘어갔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진짜 속은 것일까? 그들이라고 자반의 애주 기질을 아주 몰랐을까? 그들 역시 ‘묵인(默認)’이란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직이나 나라의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명목만 슬쩍 바꾸어 속임수를 감추려는 짓이 여전하다. 이른바 측근이란 자들이 가장 많이 벌이는 짓이 이런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으로 글자 몇 개 바꾸고, 말 몇 마디로 꾸며서 사리사욕을 채운다. 묵계와 묵인을 통해서. 그러면서 권력자에게는 한두 잔은 몸에도 좋고 정신건강에도 괜찮다는 얄팍한 말장난으로 유혹한다. 이런 자가 바로 간신이다.
문제는 못난 리더도 그 유혹을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받아든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예의 묵계와 묵인이 오고 간다. 그래서 못난 리더와 간신의 관계를 숙주와 기생충에 비유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런 묵계와 묵인,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가 저들끼리는 얼마든지 가능할지 몰라도 그 결말은 거의 비슷하게 귀착되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지어다. 실패, 패배, 망신, 망조, 망국 중 하나로. 멀리 갈 것 없이 위 곡양의 최후만 봐도 결말은 뻔하다. 사사로운 묵계와 묵인에 담긴 것은 술도 탕도 아닌 독이기 때문이다.
사족 한 마디 덧붙인다. 흔히들 술 마시고 실수한 다음 술 핑계를 댄다. 술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술에 대한 모독이다. 술 때문이 아니라 술이 그 사람이 그런 사람임을 드러내준다고 해야 옳다. 술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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