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열전 11

풍자와 해학의 청백리 안영(晏嬰) 1

by 김영수

잠시 중단했던 청백리 열전을 다시 시작합니다. 가능한 일주일에 한 편씩 올리겠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경험론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불과 16세에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의 수행원을 시작으로 변호사, 선출의원 등을 거쳐 법무부장관, 대법관을 역임하고, 얼반츠 자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았다. 공직으로 보자면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오른 최고위 관료이기도 했다.

그러나 베이컨은 씀씀이가 커서 빚을 많이 졌으며, 소송 당사자들로부터 여러 번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의회의 집중적인 탄핵을 받아 런던타워(감옥)에 며칠간 갇혔다가 파면되었다. 그는 만년을 실의 속에 보내면서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베이컨의 사례는 뛰어난 능력의 공직자라도 청렴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준다. 베어컨은 자신의 이런 뼈아픈 경험을 성찰하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공직자는 물론 모든 사람이 새겨들을만 하다.


“돈은 좋은 하인이지만, 나쁜 주인이기도 하다.

“Money is a good servant but a bad master.”

31.베이컨.jpg 베이컨은 공직자가 청렴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을 비롯한 온갖 유혹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청백리는 근엄하다(?)


청백리의 이미지는 근엄하기만 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인생의 철리(哲理)를 체득한 사람이 공직에 있다면 그는 십중팔구 유머를 구사할 줄 안다. 유머는 수준 높은 언어의 격을 대표한다. 언어의 격은 그 사람의 인격이기도 하다.

청백리의 인격은 최소한 보통 수준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청백리는 기본적으로 학식이 풍부하다. 따라서 청백리가 구사하는 언어는 대부분 남다르다. 유별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수준 높고 깊이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모든 경우에 명확한 언어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밝힌다.

공직을 수행하면서 최고 권력자는 물론 탐관오리나 간신들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기도 한다. 당연히 평소 유머를 구사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권력자가 유머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면 유머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역사상 평소에 유머, 풍자, 해학을 구사한 청백리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여기 공직생활에서는 물론 외교무대에서도 유머와 풍자를 마음껏 한껏 구사한 청백리가 있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안영(晏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안영이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세상을 떠난 해는 기원전 500년이다. 공자가 기원전 551년에 태어난 기원전 479년 우리나이 73세로 세상을 떴으니 공자보다는 연상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난 적도 있다. 이제 유머의 대가이자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역사에 그 이름을 길고 깊게 남기고 있는 안영의 행적을 따라 가보자.

32.공자(대사구).jpg 공자 나이 30세 때 제나라 경공과 안영이 노나라를 방문하여 서로 만난 것으로 추정한다. 두 사람은 정치적 견해와 입장이 서로 달라 날카롭게 부딪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안영의 간략한 생애


안영은 관중(管仲, ?~기원전 645)과 함께 춘추시대 제나라를 이끌었던 두 명의 명재상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안영보다 약 200년 전에 태어난 관중은 제나라를 춘추시대 당시 가장 강한 나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모셨던 국군 환공(桓公, 재위 기원전 685~기원전 643)은 관자의 보좌를 받아 춘추시대 최초의 패주(霸主)가 되었다. 관중은 또 지기(知己) 포숙(鮑叔)과 함께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우정의 고사를 남겼다.

안영은 역사책에서는 안자(晏子)로 많이 부른다. 자는 평중(平仲)에 춘추시대 제나라 이유(夷維, 지금의 산동성 고밀高密) 출신이다.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500년에 세상을 떠났다. 제나라의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 안약(晏弱)이 죽은 뒤 아버지의 직위를 이어 가장 높은 귀족 신분인 경(卿)이 되어,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을 거치면서 관직이 상국(相國, 재상에 해당)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관중 이후 제나라가 배출한 걸출한 재상의 한 사람으로 무려 57년 동안 제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안영의 정치적 주장은 인의(仁義)로 나라를 다스리고 평화로 외교한다는 ‘인의치국(仁義治國), 화평외교(和平外交)’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백성들을 자기 몸처럼 아꼈고, 근검절약하는 생활에 힘썼다. 박학다식했으며 논쟁에도 능숙했다. 아부를 모르는 강직한 성품으로 늘 국군의 면전에서 어진 정치를 펴고 형벌을 줄이며 세금을 가볍게 하라고 바른 소리를 했다.

《안자춘추(晏子春秋)》 8권 215장을 저술했다고 전하나 사실은 후세 사람이 그의 이름을 빌린 것이고, 대체로 안영 당시 사람들이 그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후대에 다시 정리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안영의 기본 사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안영은 중국 고대의 위대한 정치가·외교가·문학가였으며, 뛰어난 언변과 능력으로 국정을 이끌었으며, 공직자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평생 청렴한 삶을 살았던 모범적인 청백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안영은 자질이 떨어지는 통치가가 잇따라 즉위하고 국력이 쇠퇴기로 접어든 제나라를 무탈하게 잘 이끌어 강대국의 면모를 잃지 않게 한 탁월한 정치가로 그 이름을 청사에 길이 남기고 있다.


안영의 돌직구, 죽음이 어쩌고저쩌고 할 겨를


먼저 안영의 성품을 보자. 안영은 남다른 언변의 소유자였다. 그는 직언은 물론 차원이 다른 유머를 동반한 간접적 충고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먼저 안영의 직언 사례를 소개한다.

바른 말은 그 진정성 여부를 떠나 듣기에 불편하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고, 그것이 인성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충언역이(忠言逆耳)’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좋은 약이 입에 쓰지만 몸에는 좋듯이, 좋은 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언행을 가다듬는데 도움이 된다.’(‘충언역이’와 그 비슷한 뜻의 성어는 《한비자》 이후 많은 전적에 인용되어 왔다. 대개 ‘양약고구이이어병良藥苦口而利於病, 충언역이이이어행忠言逆耳而利於行’이란 명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윗사람에게 바른 말을 하는 것은 봉건 사회에서는 신하의 미덕으로 통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위대한 시인 굴원(屈原), 당나라 때의 재상 위징(魏徵), 송나라 때의 구준(寇准), 명나라 때의 해서(海瑞)와 동림당(東林黨) 등이 모두 이런 전통을 이었다. 충언과 직언하면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안영이다. 특히 안영의 언변은 타의추종을 불러할 정도로 남달랐다. 안영의 언행록이라 할 수 있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관련한 사례를 소개한다.(일부 표현을 현대어로 바꾸었다.)


경공(景公)이 신하들을 앞뒤로 줄줄이 거느리고 공부(公阜)를 유람하러 행차했다. 왕은 높은 산 위에 올라가 느긋하게 제나라 북쪽을 둘러보았다. 비옥한 들이 사방 천여 리, 광활한 강역 ⋯ 대국의 왕으로서 뿌듯한 기운이 용솟음쳤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점점 나이를 먹어 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인생의 서글픔 같은 비애감이 밀려왔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옆에 있던 안영이 이 말을 듣고는 몸을 굽혀 정중하게 절을 올리면서 싸늘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왕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제왕들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도덕적인 사람이 죽으면 휴식을 취하는 것이고, 비도덕적인 자가 죽으면 소멸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이미 죽은 태공(太公)이나 정공(定公)이 지금도 제나라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환공(桓公)・양공(襄公)・문왕(文王)・무왕(武王)이 모두 저마다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을 텐데 왕께서는 어디 가서 지금과 같은 자리를 얻습니까? 그렇게 되는 날에는 왕께서는 밀짚모자에 헤진 옷을 입고 손에는 호미나 삽을 들고 밭에 쪼그려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해야 할 터인데, 죽음이 어쩌고저쩌고할 겨를이나 있는 줄 아십니까?”


경공은 안영의 정색에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그만 입을 다물었다.


안영의 정면 비판을 경공은 그대로 들었다. 당시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겠지만 일단 그 비판이 정확하다는 것을 인식하면 지난 날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충고는 귀에 거슬리나 자신의 행동에는 유익하다’는 말의 이치다.

‘충언역이’의 특징은 충언을 하는 사람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데 있다. 경공의 그릇된 행동을 본 안영은 즉시 그것을 지적했다. 작은 잘못을 큰 잘못으로 키워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단침에 피를 보듯 폐단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요점을 밝혔다. 이는 학식과 담력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충고다. 깊은 지혜에서 우러나는 유머와 풍자를 구사할 수 있는 감각도 아울러 갖추면 금상첨화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충고와 직언의 대상에 대한 정확한 파악 또한 중요하다. 어떤 충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충고와 직언은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심하면 바른 말을 올린 사람에게 해가 돌아간다. 요컨대 상대의 수준을 잘 가려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말의 낭비도 여간 큰 낭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영의 충언이 가능했던 것도 경공의 성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계속)

34.안영.jpg 도면34. 하루에 연거푸 세 번씩이나 경공에게 충고했던 안자는 학식과 담력, 다시 말해 지혜를 갖춘 인물이었다. 지혜는 용기의 밑천이며 직언과 충언의 요건이기도 하다. 안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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