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고사성어

동문서답과 시치미

by 김영수

시사고사성어


실력(實力)도 자신(自信)도 없는 자들의 상투(常套) 수법

동문서답(東問西答)과 시치미


‘동쪽을 묻는데 서쪽으로 답한다’는 ‘동문서답’은 우리 식 사자성어이다. 대개 묻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엉뚱한 답을 말하는 것을 비유한다. 우리 속담을 한문으로 바꾸어 소개하고 있는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보이는데, <귀머거리를 조롱하다>는 <조롱자(嘲聾者)>라는 아래 우리 시 중의 ‘문동답서’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송남잡지》는 조선 말기인 19세기 재야 학자 조재삼(1808~1866)이 편찬한 백과전서 성격의 책으로 우리 속담은 ‘방언류(方言類)’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욕을 먹어도 헤벌려 웃고

봉질환개소(逢叱還開笑),


동쪽을 물으면 서쪽을 대답하네.

문동편답서(問東便答西).


처자가 일을 말할 때마다

처노매도사(妻孥每道事),


곧 소리를 낮추어 꾸짖네.

즉책어성저(卽責語聲低).


그러면서 “지금 아무렇게나 대답하여 방향을 바꾸는 것을 칭찬한다”는 해설을 달았다. 문법상 《송남잡지》의 ‘문동답서’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어감과 전달력은 ‘동문서답’이 나아 보인다. 물음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전혀 엉뚱하게 대답하거나, 일부러 질문의 의도를 흐리기 위해 전혀 관련 없는 답을 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성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후자의 경우를 나타내는 관련 성어가 많다. 그중 ‘지동설서(指東說西)’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동쪽을 가리키는데 서쪽을 말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희극작가 조우(曹禺, 1910~1996)의 대표작 《뇌우(雷雨)》에 이 표현이 나오는데, 제3막의 “나를 욕하려면 욕해. ‘지동설서’하지 말고”라는 대목이다.

같은 맥락의 성어로 ‘지상매괴(指桑罵槐)’가 있다. ‘뽕나무를 가리키며 느티나무를 욕하다’, 즉 빗대어 욕한다는 뜻이다. 청나라의 조설근(曹雪芹, 1715~1763)이 남긴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는 중국인의 자존심’이라는 장편소설 《홍루몽(紅樓夢)》 제12회를 보면 가련(賈璉)이 외출했다 돌아와서 봉저(鳳姐)에게 힘든 일이 무엇이냐 묻자 봉저가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우리 집안의 모든 일을 그 할망구들이 사사건건 간섭하는데 뭐가 좋겠어? 조금만 잘못해도 ‘빗대어 욕하는’ 잔소리란….”


제59회에도 앵아(鶯兒)가 황급히 “그것은 내가 한 일이야. 그러니 빗대어 욕하지 말란 말이야”라는 대목이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빗대어 욕한다’는 뜻의 ‘지상매괴’는 표면상 이 사람 또는 이 일을 나무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일을 욕하는 것을 말한다. ‘동문서답’과 함께 알아 두면 쓸모가 있다. 《36계》 등에 보이는 ‘동쪽에서 소리 지르고, 서쪽을 친다’는 ‘성동격서(聲東擊西)’도 비슷한 성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동문서답’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쓰인다. 그 주범은 정치인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처신이다. 특히 지적이나 질책을 피하기 위한 주요한 꼼수로 모르는 척 ‘동문서답’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동문서답’에 능숙한 자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큰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자신이 없는 자들이다. 자신이 없으니 질문의 핵심을 피해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둘째, 실력이 없는 자들이다. 실력이 없으니 자신도 없다. 셋째, 실력을 기를 노력도 하지 않는 자들이다. 넷째, 입만 살아 있는 자들이다. 말발로 적당히 땜질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동문서답’에 능숙한 자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시치미’를 잘 뗀다. ‘시치미’는 길들여진 사냥용 매의 꽁지 쪽에 단 꼬리표를 말한다. 비유하자면 매의 신분증이다. 거기에는 매의 이름, 종류, 나이, 주인 이름 등이 적혀 있다. 그런데 ‘시치미를 떼고’ 매를 훔치는 자들이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시치미를 보면 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어 주인을 찾아 줄 수 있는데 나쁜 마음을 먹고 시치미를 떼어내고 자신이 차지한 것이다. 말하자면 매 도둑놈이다. ‘시치미를 뚝 잘 떼는’ 자들을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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