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사상
《사마천사기성어대사전(司馬遷史記成語大辭典)》(2,816쪽)
세계 최초로 司馬遷과 史記의 말씀(언어)을 오늘에 되살린 획기적인 사전
노련사상(魯連辭賞)
- 노중련이 상을 사양하다.
- 권83 <노중련추양열전>
‘백인교전, 불구유시’ 항목에서 전국시대 유세가 노중련의 어린 시절 일화를 살펴본 바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노중련은 매사에 옳은 일을 위하여 바른 말로 대처했고, 남의 어려움과 얽히고설킨 분쟁을 푸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더욱이 그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는 고상한 절조와 지조를 지켰다.
일찍이 진나라 군대가 조나라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하여 조나라는 매우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 이 때 노중련은 뛰어난 변론으로 조나라가 진나라에 굴복하고 황제의 나라로 받들자는 위나라의 사신 신원연(新垣衍)을 설복시켰다.(‘노련도해’ 항목 참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난 조나라가 노중련에게 관직을 주고 거금을 하사하려 했으나 노중련은 모두 거절하고 떠났다. 당시 조나라의 실세 평원군은 노중련의 공을 크게 평가하여 그에게 벼슬을 내리고자 했으나 노중련은 세 차례나 사양했다. 평원군은 또 술자리를 크게 마련하여 앞으로 나가 술잔을 올리며 천금으로 노중련의 장수를 축하하자 노중련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선비가 귀한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을 덜어주고, 재난을 없애주며,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고받는 것은 상인들의 일이지요. 저는 차마 그렇게는 못합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 노중련은 평원군과 작별한 다음 평생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노련삼사(魯連三辭)’라는 성어가 나왔다. ‘노중련이 상(벼슬)을 (세 번이나) 사양하다’는 뜻이다. ‘노련삼사’는 ‘노련사상’과 함께 훗날 큰 공을 세우고도 높은 자리를 탐하지 않고, 의리를 중시한 반면 이익을 가볍게 여기는 행동을 칭송하는 성어가 되었다.
노중련은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다른 여느 유세가와는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보수와 명예에 초연했던 진정한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후세에 남기고 있다.
도면. 노중련은 우리나라 강화 노씨의 시조로 족보에 기재되어 있다. 사진은 강화 노씨 문중과 노중련 고향(산동성 치평현茌平縣) 사람들이 교류하는 모습이다.(사진 제공: 노동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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