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사기성어대사전

사면초가

by 김영수

《사마천사기성어대사전(司馬遷史記成語大辭典)》(2,816쪽)


세계 최초로 司馬遷과 史記의 말씀(언어)을 오늘에 되살린 획기적인 사전


사면초가(四面楚歌)


-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리다.

- 권7 <항우본기>

‘사면초가’는 역사상 유명한 고사다. 군사 방면으로 보자면 상대의 심리를 공격하는 전략인 ‘공심계(攻心計)’에 속한다. 이 고사는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투던 초한쟁패의 막바지인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 전투에서 비롯되었다. <항우본기>에 기록된 당시 상황을 요약해서 소개하면 이렇다.

항우의 군대는 해하 아래에 성벽을 쌓았다. 군대는 줄었고 식량은 다 떨어졌다. 게다가 유방의 한군과 여러 제후들의 군대가 성벽을 몇 겹으로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항우는 깜짝 놀라면서 “한군이 이미 초나라 땅을 점령했단 말인가? 어찌하여 초나라 사람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한신(또는 장량)은 ‘사면초가’의 전략으로 초나라 병사들의 향수를 부추겼고, 초나라 병사들의 심리상태는 혼란에 빠졌다. 병사들은 하나 둘 군영을 이탈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온 8천여 명의 아들과 형제들은 애간장을 녹이는 고향의 노래 때문에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항우와 여러 해 동고동락해 온 장군들마저 슬그머니 말 한마디 없이 떠났다. 숙부 항백(項伯)마저 도망치듯 떠났다. 항우는 ‘사면초가’ 속에서 사랑하는 우희(虞姬)와 이별하고 오강(烏江)에서 칼을 뽑아 자결했다.

심리전 모략의 가장 성공한 대표적인 본보기로 ‘사면초가’는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항우와 우희의 애틋한 이별가 ‘패왕별희(覇王別姬)’와 함께.

전투력과 집단 전체의 사기(士氣)는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사기는 또 사병들의 정서(情緖)와 관계된다. 각종 수단을 동원해서 상대의 정서를 흩어 놓는 한편, 아군의 사기를 고무시키는 것은 장수들이 전략을 구사할 때 항상 중시하는 내용이다. 《손자병법》 <구지(九地)> 편을 보면 “산지(散地, 자기 땅)에서는 전투하지 말아야 하며, 경지(輕地, 적의 국경에 들어가긴 했으나, 깊숙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서는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이 부분을 좀 더 설명하면 이렇다. 자기 경내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병사들이 집에서 멀리 있지 않기 때문에 굳이 죽을힘을 다해 진격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물러나면 돌아갈 곳이 있다고 여겨 싸우면서도 군심이 흩어지기 쉽다. 또 적국의 국경 깊숙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서 머무르는 것은 옳지 않다. 본국과 멀지 않기 때문에 집과 고향 생각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고향을 생각하는 정서가 사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예로부터 전략가들이 이를 매우 중시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여몽(呂蒙, 178~220)이 형양(荊襄) 전투에서 이 ‘사면초가’를 모방하여 승리를 거둔 일이 기록되어 있다. 여몽은 촉군 병사들의 가족과 친척들을 동원하여 산 위에서 부모형제의 이름을 부르면서 고함을 지르게 하여 군심을 동요시켰다. 형주의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모 형제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군심은 이미 흩어졌고 모두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를 쫓아 떠나갔다. 관우(關羽)는 쉴 새 없이 고함을 질러 댔으나 남은 부하는 30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천하에 위세를 떨치던 관우 역시 측근들마저 다 떠나 버린 외롭고 쓸쓸한 항우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면초가’는 우리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고등학교 한문 교과서 등에 소개되어 있다.(본문 pp. 875~876)

도면. ‘사면초가’는 심리전의 고전으로 오랫동안 차용되어 왔다. 그림은 장량이 사면초가를 전술을 구사할 때 피리를 부는 모습이다.(2014년 사진)


키워드: 군사, 전술, 군심, 심리전,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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