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전시와 고문 기술자의 죽음
김영수의 지인논세(知人論世)
‘봉황전시(鳳凰殿翅)’와 고문(拷問) 기술자의 죽음
인간 개개인의 모든 삶이 그렇듯 인간 활동의 집합인 역사에도 어두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역사의 ‘다크 서클(dark circle)’이라 부른다. 중국어로는 ‘흑안권(黑眼圈)’이라 한다. 이런 역사의 다크 서클들 중에서도 ‘인권유린(人權蹂躪)’은 지난 수천 년 과거사에서는 물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류 역사의 가장 어두운 면이다.
우리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독재정권에서 자행된, 이른바 고문(拷問, torture)이란 국가 폭력은 한국 현대사 곳곳에 큰 상처를 냈다. 3월 25일, 이런 국가폭력을 대행한 고문 기술자 이근안(1938~2026)이 사망했다. 그것도 90세 전두환처럼 88세 천수를 누리고. 이근안은 마무리에 좀 더 보태기로 하고, 먼저 중국 역사 한 시기를 풍미(?)했던 고문 기술자들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기록상 기술자라 부를 수 있는 고문 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한 시대는 당나라, 그것도 최초이자 유일한 여황제 무측천(武則天, 624~705) 시기였다. 무측천은 실제로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를 세웠다. 죽기 전 다시 정권을 이씨에게 돌려주긴 했지만 엄연히 당을 한 순간 멸망시킨 여장부였다.
무측천은 정통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군자와 소인을 절묘하게 배합하여 기용하는 정치 기술을 보여주었다.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고, 소인배들 중 혹리(酷吏)들을 대거 기용하여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을 가차 없이 제거했다. 이 혹리들 중에는 고문을 즐기고 온각 고문기술을 창안해낸 자들이 여럿이었다. 이 중 한 사람을 집중 소개한다.
먼저 내준신(來俊臣)이란 자다. 그는 무측천 최 측근의 한 사람으로 그가 권력을 잡았을 때 무측천 자신과 무(武)씨 성을 가진 친척 외에 모든 정부 관리와 연루된 민중들 모두가 그의 형사 소송법(심문법), 즉 혹형(고문)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황족과 재상을 포함한 누구도 내준신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으면 살아서 옥문을 나오기 힘들었다. 그가 피고를 심문할 때 사용한 혹형으로 ‘가(枷, 죄수에게 씌우는 칼)’라는 형틀 한 가지만 하더라도 심장 떨리는 십 여 개의 별명이 있었다. 몸의 모든 맥을 멈추게 한다는 ‘정백맥(定百脈)’과 숨을 못 쉬게 만드는 ‘천부득(喘不得)’을 비롯하여 의미도 오묘한 ‘돌지후(突地吼)’․‘착즉승(著卽承)’․‘실백담(失魄膽)’․‘실동반(實同反)’․‘반시실(反是實)’․‘사저수(死猪愁)’․‘구즉사(求卽死)’․‘구파가(求破家)’ 등이 구사되었다.
다른 혹형도 나름대로의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대단히 아름다워 인권과 인성의 존엄에 대한 좌절과 조롱의 의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봉황전시(鳳凰殿翅)’는 ‘봉황이 날개를 펼친다’는 우아한 뜻이지만 실제는 가혹한 고문의 한 방법이었다. 이 고문은 피고의 손발을 짧은 나무에 묶은 다음 밧줄로 목을 걸어 앞쪽으로 끌어당기는(이를 ‘봉황전시’로 표현) 것으로 제 때에 자백하지 않으면 목이 바로 끊어지는 것이었다. 신선이 과일을 바친다는 의미의 ‘선인헌과(仙人獻果)’라는 형벌은 피고를 발가벗긴 다음 깨진 기왓장 위에 꿇리고 두 손으로 머리까지 칼을 바쳐들게 하는 것이다. 옥녀가 사다리를 오른다는 뜻의 ‘옥녀등제(玉女登梯)’는 피고를 높은 사다리에 오르게 한 다음 목에다 밧줄을 묶어 등쪽으로 끌어당기는 혹형으로 질식사하거나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기 일쑤였다.
내준신은 《나직경(羅織經)》이란 책도 남겼다. 이 책은 놀랍게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억울한 범죄를 날조하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내준신이 제시하는 범좌 날조 과정은 모두 일곱 단계인데 그것을 아래에 소개한다.
1. 먼저 대상을 확정한다.
2. 특무(지금의 경찰과 검찰)이 사방팔방으로 관련 기관이나 권력을 쥔 인물들에게 은밀히 문서나 검거 문서를 보낸다.
3. 관련 기관이나 권력자가 이 문서를 보고 조사를 명령하기를 기다린다.(상황이 여기까지 발전하면 대상의 운명은 벌써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혹리가 대상을 확정할 때 대상의 운명이 정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반과 같은 반국가적인 엄청난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문서가 전해지면 조사를 명령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4. 하달된 문서를 근거로 하여 대상을 체포 심문한다.
5. 심문 때 혹형(고문)을 사용하여 이상적인 진술을 얻어낸다. 주의할 것은 자백을 거부하고 혹형 때문에 죽으면 원래의 죄에다 ‘죄가 두려워 자살했다’는 죄명이 추가된다는 점이다. 피고는 두 가지 길 밖에는 없다. 자백하거나 혹형에 죽거나. 사실 모든 피고에게 혹형을 할 필요가 없다. 재상 적인걸(狄仁杰)의 경우는 매조차 대지 않았다. 그저 협조하지 않을 경우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만으로 같은 효과를 냈다.
6. 심문 때 피고로 하여금 연루자들을 자백하게 함으로써 사건을 사회로 확대하여 관련자의 수자와 범위를 권력자나 혹리가 결정할 수 있게 한다.
7. 피고들의 자백을 정리하여 조금도 오차가 없게 맞아 떨어지게 한다. 이렇게 과정이 끝나면 모반이라는 반국가적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선언한다.
어떤가? 독재정권이 저지른 수법과 하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한국 현대사에서 천하에 악명을 떨쳤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3월 25일 88세로 사망했다. 정권을 비판하는 민주인사과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잔혹한 고문은 독재정권의 잔인하고 추악한 얼굴을 대변했다. 경찰 공무원 이근안은 바로 독재정권의 민낯 그 자체였다. 이 자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진심에서 우러난 반성을 보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자신의 짓을 애국의 한 방법이었다고 강변했다.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보듯이 진짜 나쁜 자는 결코 반성하지 않는다.
이근안의 죽음을 계기로 좀 더 생각해볼 점은 이근안의 배후에 있던 권력자는 물론, 고문으로 받아낸 거짓 자백을 가지고 실형을 내려 권력(자)에 아부한 판사들, 즉 ‘판간(判奸)’들의 짓거리다. 그것이 지금 반드시 개혁해야 할 대상 첫 손가락에 꼽히고 있는 사법부의 과거이자 민낯이기 때문이다. 검찰이든 군인이든 우리 사회 이른바 모든 기득권 계층의 민낯은 이렇게 가깝게는 독재정권이란 과거, 좀 더 멀리는 친일이라는 과거와 바로 닿아 있다. 누누이 말하는 과거청산이 왜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우리 기득권층에 곳곳에 대한 개혁이 얼마나 필요하고 절실한가를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죽음으로 다시 한 번 침통한 마음으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