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9일: 무측은지심(無惻隱之心), 비인야(非人也); ~
2월 29일의 고사성어(60)
무측은지심(無惻隱之心), 비인야(非人也); 무수오지심(無羞惡之心), 비인야(非人也); 무사양지심(無辭讓之心), 비인야(非人也); 무시비지심(無是非之心), 비인야(非人也)
* 동정심이 없고, 부끄러움과 혐오를 모르고, 겸손과 양보할 줄 모르고, 시비를 분간할 줄 모르면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 《맹자》 <공손추(公孫丑)>(상)
눈으로 읽으며 낭독하기
유명한 맹자의 ‘사단(四端)’, 즉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 대목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다.
“동정심은 인(仁)의 출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출발이고, 겸손과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출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출발이다. 사람에게는 이 네 가지의 단서[사단四端]가 있다는 것은 사지(四肢)가 있는 몸통과 같은 것이다.”
명말청초의 혁신 사상가 선산(船山) 왕부지(王夫之)는 배움과 실천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배우기는 쉬울지 몰라도 좋아하기란 어렵고(학이이호난學易而好難), 행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꾸준히 하기란 어렵고(행이이역난行易而力難), 부끄러움을 느끼기는 쉬워도 왜 부끄러운가를 알기란 어렵다(치이이지난恥易而知難).”
이상은 ‘호학(好學)’, ‘역행(力行)’, ‘지치(知恥)’ 3자의 관계를 말한 것인데, 왕부지는 그중에서도 ‘지치’를 특별히 강조했다. 누구든 언행에 대해 비판과 질책을 받으면 이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그 부끄러움이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대개는 자신을 나무란 사람들을 원망하고 증오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왕부지가 말한 부끄러움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지만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지를 알기란 어렵다는 말의 의미다.
맹자는 ‘사단’을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 중 부끄러움과 혐오를 안다는 것은 의로움의 출발이라는 지적과 시비를 분간하는 마음은 지혜의 출발이라는 대목이 별나게 마음에 와닿는다. 지금 우리 현실을 보면, 부끄러움을 모르고, 무작정 사람을 혐오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악을 추종하는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손으로 써보며 생각하기
* 무측은지심(無惻隱之心), 비인야(非人也); 무수오지심(無羞惡之心), 비인야(非人也); 무사양지심(無辭讓之心), 비인야(非人也); 무시비지심(無是非之心), 비인야(非人也).
* 학이이호난(學易而好難), 행이이역난(行易而力難), 치이이지난(恥易而知難).
* 바탕 사진: 맹자의 사당인 맹묘의 '아성전'
* 유튜브 ‘김영수의 좀 알자 중국’: 하루 명언공부 2월 29일
- 이가난진(以假亂眞)
- 거짓 모습으로 진짜를 혼란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