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2월 눈 내리는 운동장의 이별

by 할미꽃

하늘에서는 축복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1959년 12월 27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그 시린 겨울날, 나는 정든 학교 운동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내가 정든 교단을 떠나야 했던 속사정은 서글펐다. 학교장은 나를 자신의 질부(조카며느리)로 삼으려 했으나, 내게는 이미 마음을 나눈 동료 교사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학교장의 태도는 싸늘해졌고, 사립 중학교였던 그곳에서 내게 돌아온 것은 부당한 퇴직 권유였다.

억울함이 가슴을 쳤지만, 나는 구차해지지 않기로 했다. 이임사를 하러 나가는 길, 나는 가장 아껴두었던 자주색 비로드 치마를 꺼내 입고 빳빳하게 풀을 먹인 하얀 모범단 저고리를 받쳐 입었다. 그것은 부당한 권력 앞에 굴하지 않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한 나의 당당한 선언이었다.

1959년 12월 27일, 함박눈이 쏟아져 온 천지가 하얗던 날이었다.

이임식을 하기 위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어디선가 흑 흑 느끼는 소리가 시작되더니 운동장 전체로 파도처럼 퍼졌다. 끝내는 그 흐느낌이 통곡이 되어 운동장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우리 학교는 이른바 '3차 학교'라 불리며 세상의 눈초리를 받던 곳이었다. 아이들의 눈빛엔 늘 열등감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불러 면담하며 "너희는 할 수 있다", "너희는 훌륭해"라고 손을 맞잡아 주었다.

아이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자신들을 귀하게 여겨준 유일한 선생님이라고.

쏟아지는 눈송이 사이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나는 더 이상 이임사를 이어 갈 수가 없어 돌아서 눈물을 흘리며 단상을 내려왔다. 자주색 비로드 치마 끝단에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학교 문을 나서는 내 곁에는, 훗날 60년을 함께하며 내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그 사람, 나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기록은 세월의 풍파 속에 흩어졌지만 , 여든살의 제자가 지난 해 보내왔던 그날의 풍경은 내 가슴속에 여전히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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