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by 할미꽃

내가 어항 앞으로 다가서기만 하면, 유유히 꼬리를 흔들거리며 노닐던 붕어들이 입을 벌이고 재빨리 내 앞으로 모여든다.

'그래, 아침 먹어야지 '

붕어 먹이를 한 꼬집 집어서 물 위에 띄워 준다.

곧 돌아서지 못하고 시선은 거기에 한동안 머물러 있다.

행여 큰놈들이 다 먹어 치워버리지나 않나 지켜보는 것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제일 작은 거 한 마리가 물 밑에 엎드려 미동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다음 날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큰 붕어들 때문에 얻어먹지 못하여 죽었다는 생각을 했다.

다섯 마리 모두가 한 두 알씩 입에 넣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선다.


아주 오래 전 교사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교실 뒷 편에, 환경미화 겸 교육용으로 마련한 커다란 어항이 있었다.

커다란 어항 속에는, 붕어들뿐 아니라 우렁이도 있었다.

큰 밤톨만한 우렁이가 어항 벽에 생긴 이끼를 핥으며 흐느적거리며 서서히 옮겨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렁이가 갑자기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도 이상하여 자세히 드려다 보니, 벽에 붙어 있던 우렁이는 빈 배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고, 우렁이가 있던 곳에는 수수알만한 새끼 우렁이들이 다닥다닥 셀 수 없이 많이 붙어 있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우렁이는 몸 속에서 알을 부화하여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을 세상 밖으로 쏟아 내보내고 나면, 어미는 죽어서 껍데기만 남는 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둥둥 떠 있는 우렁이 껍질을 보며 그 때 이런 생각을 했다.

‘ 어미란 저런 것이구나! ’

어미들이란 자식들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을 온전히 다 바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렁이가 몸 속에서 알을 낳고 부화한다는 얘기는 잘못된 전설에 불과하다.

진실은 이렇다. 우렁이는 몸 밖에서 알을 낳고, 알은 밖에서 부화하는 것이고, 어미 우렁이는, 몸 안의 살이 다 삭아 없어지면서 빈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그러한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일이다.

오랜 세월동안 나 자신을 그때 교실에서 둥둥 떠 있던 우렁이에 대입하면서 살아왔다.


아이들이 성가하여 모두 떠나고, 정년 퇴임까지 했으니 노후 생활이 적적하였다.

어느 날, 영감이 조그만 어항과 함께 주황색 붕어들이 든 물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영감이 사 들고 들어올 때에는 새끼손가락 반 만 하던 놈들이

손바닥 반 크기만큼 잘 자랐다.

정성을 다하는 영감의 보살핌 때문일 게다.

대여섯 마리나 되던 놈들이 두 마리만 남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두 마리는 아주 오래 버티며 살았다.

손바닥만큼이나 크게 자랐다.

영감과 나 두 노인이 소파에 기대 앉아 어항을 바라본다.

두 마리는 투명하리 만치 얇고 커다란 삼각 꼬리를 가졌다. 지느러미를 하늘거리며 유유히 떠다녔다. 마치 무희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 같았다.

영감이 세상 떠난 후 며칠 지난 어느 날이었다.

금붕어 한 마리가 죽어서 물 위에 둥둥 떠 있고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그 주위를 돌고 있었다.

붕어도 나처럼 혼자가 되었다.

홀로 남은 붕어는 새끼 때에는 주황색이었었는데, 오래 살아서 그런지 거의 흰색으로 변했고 꼬리도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하게 되었다.

꼬리를 너울거리는 모습에서, 죽음을 애도하는 소복의 여인이 살풀이 춤을 추는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한 마리를 지켜 보자니, 내 외로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금붕어 여러 마리를 사다가 넣어 주었다. 어항 속은 다시 활기 차고 생기가 넘쳤다.

나를 기다리는 식구들이 많이 늘었다.


금붕어들에게 먹이를 주고 나서, 창문을 열고 먼 하늘을 본다. 하늘색이 참 예쁘다.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 한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다.

구름 속에서, 붕어를 사들고 들어오던 영감의 모습도 보이고,

어항 속에서 둥둥 떠 있던 껍데기만 남은 우렁이도 보인다.

내 젊은 날엔 바라볼 하늘이 없었다. 짐 지고 걸어야 할 땅만 있었다. 지금은 짐도 없고, 걸어야 할 땅도 없고, 바라 볼 하늘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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