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기슭에 새로운 길이 생겼다. 2km 남짓한 산길인데, 평지를 걷는 것처럼 경사를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완만하다.
산 중턱에 이르러서는 길이 지그재그로 여러 번 꺾인다. 20여 미터나 되는 길을 열 번도 넘게 굽이굽이 돌아가야 비로소 중턱에 닿는다. 정밀하게 경사를 계산하여 모든 이가 편히 걸을 수 있도록 설계한 이의 지혜와 수고가 느껴져 걸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전하게 된다.
산이야 예부터 그 자리에 있었건만, 사람들은 산이 새로 생긴 것처럼 너도나도 찾아든다. 폭 1미터 남짓한 좁다란 데크 길을 일렬로 줄지어 걷는 사람들을 보면, 먹이를 찾아가는 개미들의 행렬 같기도 하고 등교하는 학생들의 뒷모습 같기도 하다. 거대한 산의 정기가 그 좁은 길을 통해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에 젖어보기도 한다.
그 길 위에는 작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 운동복 차림으로 씩씩하게 뛰어가는 이, 지팡이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어르신, 잡담하며 걷는 여인들과 눈만 내놓고 걷는 젊은이, 심지어 겨울인데도 민소매를 입은 이까지... 모습은 제각각이다.
가끔은 가슴 뭉클한 풍경을 마주한다. 부인이 탄 휠체어를 한 팔로 밀고 가는 남자, 그 남자는 팔이 하나밖에 없는 남자였다. 땀을 닦으며 앞서가는 부인의 등을 부채질해 주는 백발의 노신사, 그리고 마비된 몸을 이끌고 난간을 붙잡으며 걷기 연습을 하는 중년 남성까지. 그들은 각자의 삶이라는 무게를 지고 이 길을 걷고 있다.
나는 나이가 많아도 아주 잘 걷는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이 길에서 나의 오만이 꺾였다. 뒤처져 오던 사람들이 하나둘 나를 추월해 갈 때, 반사적으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독였다.
'걷는 속도는 나이에 반비례하는 법이지.'
성큼성큼 나를 앞질러 가는 젊은이들의 등 뒤에 대고 혼잣말을 건넨다. "그래, 너희는 시속 60km로 달려라. 내 차는 고물이어서 시속 30km밖에 안 나온단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천천히 갈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쉼터가 나오면 슬그머니 걸터앉는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매미 소리를 들으며 아득한 옛 기억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본다. 천천히 걷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