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 막내아들과 함께 강화도 일주 드라이브를 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시골 마을과 바다가 눈 앞에 지나갔다. 그러다가 외딴집 지붕 위에 길게 뻗어 있는 호박 넝쿨이 눈에 들어왔다. 그 호박 넝쿨이 내 시야에서 떨어지지 않고 나를 계속 따라왔다.
내가 사는 마을은 수락산 기슭에 있다. 현관문을 나서서 3분 정도만 걸어가면 산으로 오를 수 있는 언덕길이 나온다. 산 입구까지의 길이는 100여 미터 남짓한데 오른편으로는 배 밭이 있고, 왼편으로는 아파트를 가리려는 듯 아까시나무가 줄지어 있다. 그 나무들은 가파른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몸짓으로 겨우 서 있다.
아카시아 가지 하나 따서 바둑알 같은 잎을 하나둘 떨구면서 아득히 멀어져 간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제비꽃, 민들레, 꽃다지, 냉이, 풀숲에 가려진 풀꽃들에도 정다운 눈인사 하며 걷는 나의 산책길이다.
누구의 짓인지 아카시아의 밑동을 싹둑 잘라 버려 , 가려졌던 아파트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더구나 길동무 같던 들풀들의 영토에는 토란, 피마자, 호박, 들깨 등의 먹거리가 되는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한 뼘 땅도 놀리지 않겠다는 그 누구의 부지런함에 은근히 심술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호박 넝쿨의 고리 손이 가시철망을 타고 허공을 향해 더 높이 오르려 손짓하는 게 눈에 띄었다. 순간 그 호박 넝쿨손이 내 가슴 속으로 날아와 붙었다. 커다란 호박잎 위로 어머니의 음전한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 미안해’하는 말이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맴돌았다.
올해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서른 해가 되건만, 호박 넝쿨만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꼿꼿이 머리를 들고 되살아나곤 한다.
단간방에서 시작한 신접 살림이었지만, 몇 차례 이사를 하면서 드디어 늘 그려 오던 정원이 있는 집을 갖게 되었다.
마당에 잔디를 심고 사이사이에 간격을 맞춰 장미를 욕심껏 심었다.
각가지 색의 꽃이 피어나는 향기 가득한 꽃밭을 머리 속에 그리며 매일 들여다보며 지냈다.
마당 한구석에서 내가 심지 않은 것이 조그만 잎을 내밀며 싹을 틔우더니 기세도 좋게 자라더니 차츰 갈고리 같은 손을 내밀기 시작하고 며칠 새 한 발이나 되게 길게 자랐다. 내가 애지 중지하는 장미 영역까지 덩굴이 벋어나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바라만 보다가 어는 날 어머니에게 양해를 구했다.
“엄마! 저 호박 넝쿨 때문에 장미가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겠어. 뽑아 버립시다” 어머니를 졸랐다.
어머니는 조금만 더 있으면 애호박이 달릴 것이라면서 동의해 주지 않으셨다. 하나의 뜰을 놓고 나는 예쁜 꽃을 기다렸고, 어머니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애호박을 기다리셨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앞에는 조그만 텃밭이 있었고, 어머니는 거기에 호박, 가지, 토마토 등을 심어 놓으시고 열매가 달리면 그게 보기 좋아 선뜻 따서 반찬에 쓰지도 않던 분이셨다.
혼자 집을 지키시며 세월이 무료하고 어떤 재미라도 찾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울 밑에 호박씨 서너 개를 심어 놓고 호박이 열리기를 기다리신 것일게다.
장미들이 각 가지 색으로 봉오리 지어 만개를 앞두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직장에서 돌아와 핸드백을 든 채 장미꽃잎이 얼마나 더 벌어졌으려나 들여다보는데, 장미보다 호박 넝쿨이 눈앞에 먼저 들어왔다. 드디어 호박넝쿨이 장미나무를 타고 기어 오르고 있었다. 순간 호박 넝쿨에 대한 미움이 와락 일어나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백을 마루에 동댕이쳐놓고 넝쿨들을 후드득 거두어 장독대 밑으로 던져 버렸다.
언제 나오셨는지 어머니가 마루에 서 계셨다. 내 앙칼진 모습을 모두 지켜보셨으리라. 마루에 서 계시던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당신 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의 등 뒤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과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호박 넝쿨에 휘감겨 갑갑했을 장미들이 시원해졌겠다는 생각에 그 미안함을 조심스럽게 접었다.
그해 늦은 가을, 어머니는 송편 반죽을 하시다 말고 “아이고 머리야” 한마디 하시고 더는 아무 말씀도 못 하신 채 사흘 만에 속절없이 세상을 뜨셨다.
나는 그때 어머니 상청 앞에 엎드려 통곡했다. 참 많이 울었다.
나이 쉰이 넘도록 어머니 사랑 안에 살아오면서 어머니를 서운케 해드린 일, 불효한 일이 얼마나 많았으랴마는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고, 무자비하게 걷어버린 호박 넝쿨이 강하게 내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다. 죄책감이 통곡이 되어 터진 것이다.
내색도 못 할 서운함과 외로움, 그런 것들이 어머니 가슴 속에 쌓이고 쌓여, 더는 삭여낼 수 없고 더 받아들일 마음의 자리가 없어 그만 생을 놓으신 게 아닌가 하는 회한으로 내 가슴은 찢어지듯 아팠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남편은 호박잎쌈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니 가을이 되면 으레 호박순을 자주 사게 된다. 호박순 다발을 가슴에 안고 올 때면 언제나 어머니의 호박 넝쿨이 생각난다.
한코 한코 장미 잎을 떠 나갈 때 , 그 옛날 어머니를 서운케 해 드렸던 장미꽃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