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굴레

by 할미꽃

교장 자격연수 때 있었던 얘기다.

강단을 이리 저리 몇 거름씩 발걸음을 옮기기도 하면서 강의하는 그 목소리는 카랑 카랑 힘이 있었고, 움직이는 발걸음에서는 약간의 거만이 보였다.

강사는 신학문을 잔뜩 쥐고 돌아온 유학파 새파란 젊은이었다.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 벌 되는 사람들이,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경청하고 있었다.

강사가 ‘생각의 파괴’를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한 답안을 예로 들었다.


적지 않은 학생 수를 제시하며,

“여러분이 교장이 되었을 때, 이상으로 하는 학교 교사(校舍)의 전개도를 그려 오라”는 과제를 냈더니 어느 수강생이 교실 몇 개를 그려 놓고, 이부제로 나누어 학생 수를 배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종이 위에 그리라는데 왜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종이 위에서까지 이부제를 하느냐며, 강사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 말투에는 비아냥이 묻어 있었다.


수강생인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6·25를 겪은 세대다.

외국 유학은커녕, 먹고 사는 일조차 버거웠던 사람들이다.

가난이 두려운 우리 세대들은, 허리띠를 동여매고 자식을 유학길에 오르게 했다.

그래서 그 비아냥이 미웠고, 한편으로는 우리 세대에 대한 연민이 일었다.


가난이라는 굴레는 너무도 단단해서,

생각조차 그 안에서 자라난다.

그 답안지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해 온 사람의 방식이었다. 폄하가 아니라 연민이었다.

수십년 지난 지금은 그 예를 들고 온 강사도, 어쩌면 어린 시절에 이부제 아니면 삼부제 학교에 다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움을 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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