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2

by 할미꽃

김소월의 시 “초혼” 의 한 구절,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그 말을 빌려 하는 말이다. “꺼내다가 내가 부서질 마음”이다.

아들이 우리 내외를 태우고 교외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노라 나선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 어디로 갈까요?” 아들이 묻는 말에 영감은 임진각 쪽으로 가보자고 했다.

임진각 부근에 있는, 자기가 좋아하는 메기매운탕 집을 마음속에 두고 하는 말인 것을 나는 알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여기까지 왔으니 임진각에 들렀다 가자” 고 내가 부탁했다.

영감과 아들은 임진각 경내를 한 바퀴 휙 돌아보고 미련도 없는 듯이 주차장으로 내려가 버렸다.

나는 망향대를 뒤 돌아 북쪽 끝 난간 앞에 기대섰다.

철책 너머로 북한이 저만치 건너다보였다.

성냥갑을 이어 놓은 것 같은 집들이 볕을 바라보고 거북이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부동자세로 서서 눈을 비벼가며 그 집에 있을 문을 찾고 있었다.


아버지가 공산당원에게 납치되어 가신 후, 나날을 애태우며 지내던 어느 날, 낯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손바닥만한 종이쪽지 하나를 건네받았다.

“이북으로 가고 있다”

아무렇게나 찢긴 양회푸대 조각에 쓰인 한마디였다.

그 쪽지를 받아 쥐고, 아버지의 산더미 만한 두려움과 황급한 마음이 내 온 몸을 덮쳐왔었다.



포로수용소 같은 저 집 안에 아버지가 누워계신 것은 아닌가.

기다리고 있으면, 혹시 아버지가 그때처럼 허리춤 움켜쥐시고 엉금엉금 문 밖으로 나오시지나 않을까. 나는 망부석처럼 서서 환상에 잡힌 채 발길을 떼지 못했다.


내 아버지는 열한 살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셨지만, 영특함과 지혜가 남다른 분이셨다. 자수성가로 평강 땅에 백마지기나 되는 논을 일구셨고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하셨다.

교육열 또한 대단하셨다. 딸은 소학교도 잘 보내지 않던 그 시절, 내 아버지는 큰 딸이 서울의 경기여고에 합격하자, 새벽 네 시에 집을 나서야 하는 딸의 통학길이 안쓰러워, 서울 용두동에 집까지 마련해 주신 분이다.

그런 까닭으로 내가 경춘선 시발역성동역 근처에서 자라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교육열은, 당신 자식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도 배움의 길을 열어 주셨다. 사비로 마을에 야학당을 열어, 한글 모르는 어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시기도 했다.

그러다가 6.25가 터졌다.

젊은 남자들은 인민군으로 끌려가는 세상이 되었다.

공산당원들이 대문을 두드리면,

내 오빠들은 마룻장 밑에, 광 속 톱밥 자루 속에, 커다란 이불 보따리 속에 각각 숨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적은 오빠들만이 아니었다.

아버지 역시 북한을 등지고 내려온 지주였기에 그들에게 척결대상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납치대상인 줄 아셨지만 숨지 않으셨다, 당신이 숨으면 그들이 집안을 샅샅이 뒤질 것이고, 그러면 숨어 있는 아들들이 들킬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방문을 거세게 열어젖히며 군화를 신은 발들이 방안으로 저벅 저벅 들이닥쳤다. 아버지는 아무런 항거도 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따라나서셨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멀찍이서 아버지 뒤를 밟았다. 그들은 아버지를 성동 파출소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파출소 문을 놓칠세라 눈길을 떼지 않고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지가 보였다.

허리띠를 뺏긴 것인지,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움켜쥐고 나오시는 모습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오시는 길이었다. 아버지는 긴장할 때면 화장실에 자주 가시곤 했다.

다시 파출소 안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축 늘어진 등 뒷모습. 그것이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생애였다.


망향대에서 바라본 저 수용소 같은 곳에서, 홀로 외롭게 세상을 뜨셨을 것을 생각하니 뜨거운 것이 온몸에 꽉 차오르다가 목을 조여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끝내 입 밖으로 뜨거운 김이 터져나오며 흐느끼는 눈물이 되어 분출되었다.

주차장에서 나를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내려가는 길은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언제 세상을 떠나셨는지 어떻게 가셨는지,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저 많이 아프지 않게 가셨기만을 허공에대고 바랄 뿐이다.

아버지 돌아가시는 길에 눈물 한줄기 보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나는 남겨진 생애 내내 눈물을 흘려보낸다.

우리 가족에겐 아버지 제삿날이 없다.

그저 가슴 속에 까맣게 탄 흉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꺼내려 하면 내가 부서질 것 같은 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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