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글 한조각에 담은 소망

by 할미꽃

‘저 물길을 건너야 하는데... 기어이 건너가야만 하는데...’ 말없이 흐르는 물길 앞에 서서 노인이 서성이며 중얼거린다. 깊어가는 적막을 깨고 노인은 건너편을 향해 시선을 던진다.

오늘은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낼까. 두리번거리다 달력을 본다. 빨간 동그라미 하나가 눈에 띈다. 조카의 딸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다. 텅 빈 마음에 작은 씨앗 하나가 날아와 박힌다.

무엇을 입고 가야 할까. 부조는 얼마나 해야 할까. 그곳에 가면 또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아직 만나기도 전인데, 오랫동안 보지 못한 조카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라 눈가가 촉촉이 젖어 온다. 같은 부모의 피를 이어받아 어릴 적 한솥밥을 먹고 살았던 아이들. 세월의 무게 탓인지, 변해가는 인심 탓인지 보지 못하고 지낸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옷장을 열어 이것저것 입어본다. 모자도 써 보고, 가방 속 소지품도 꼼꼼히 챙긴다. 이렇게 달력 위의 빨간 동그라미 하나가 세상을 향해 나가는 든든한 징검다리가 된다.

멀리 사는 아들이 있다. 아들은 가끔 내게 징검다리 하나를 놓아준다. 서울과 타지, 그 먼 거리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하는 날이다. 나는 또 옷장 속에 갇혀 있던 옷을 골라 입고 현관문을 나선다. 정지된 것만 같던 무료한 삶에 푸른 생기가 도는 날이다.

어느 날은 친구가 그냥 보고 싶다며 점심 약속을 잡는다. 달력에 동그라미가 하나 더 그려진다. 그 많던 친구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남은 이들도 몸이 불편해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누군가 놓아주길 바라는 징검다리에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 약속 하나가 이토록 달디달다.

아흔두 해 긴 여정의 길목에서 주워 온 조약돌들을 이제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저 물길 너머, 미지의 세계인 피안(彼岸)에 이르는 길을 향해 나는 오늘도 글 한 조각으로 징검다리를 놓는다.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이 문장들이, 내가 저 너머로 무사히 건너갈 수 있게 지탱해 주는 가장 단단한 돌판임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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