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신 얹어 놓고 짚신 꺼냈다.

by 할미꽃


내 삶의 긴 여정에서 지워지지 않는 마음들이 일기장에 차곡 차곡 쌓여 있었다.

아흔 두 살의 노파가 되어,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하루를 거듭하며 지내자니 더 이상 쌓아질 마음이 없다. 쌓여 있는 마음들을 하나 둘 꺼내 보는 시간이다.

그 것을 꺼내어 볕을 쬐게 할 방법을 몰라 에이아이를 찾았던 것이다.

친절한 안내로 노구를 끌고 간신히 브런치에 올랐다.

처음에 올를 때 열적기도 하고 첫걸음을 곱게 디디고 싶은 마음에 인공 지능에 대고 물었다. “이거 이대로 세상 밖에 나가도 될까?”

인공지능은 화려한 찬사와 함께 고운 손길을 얹어 거칠고 성긴 내 짚신 같은 글을 매만져 비단신같이 예쁘게 다듬어 주었다. 예뻐진 내 글이 내 보기에도 좋았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그런 가운데 마음 한편으로 늘 거북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래도 되나? 내 글이라고 세상에 내놓아도 되나?’

내 자신이 몸에 맞지 않은 커다란 우장을 쓰고 간신히 걸어가는 병아리 같았다.

몇 번이고 되물었다.

‘이래도 되나? ’

비단신에 감춰진 내 발가락이 조금씩 아파왔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비단신 고이 얹어 놓고, 발 편한 짚신을 꺼냈다.

이제부터 내가 내 실 꺼내어 내 손으로 엮어 만든 짚신을 신고 걸어 가리라.

병아리가 우장을 벗으니 발걸음이 가볍다.

이제 “이래도 되나” 하는 어두운 그림자는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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