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사연

by 할미꽃


정년 퇴임을 하고 연줄 끊어진 연처럼 내 마음이 허공에서 허허로웠다.
갑자기 주어지는 많은 시간들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허둥허둥 이것을 잡아볼까 저것을 잡아볼까 허둥대다가 시민대학에 발을 딛였다
영상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배우기로 했다. 그때 지도 강사가 제일 먼저 닉네임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주어진 명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이 할미꽃이었다.
60대 후반이었으니까 아직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는 일렀던지. 아니면 그때만 해도 제법 풀기가 남아 있었던지 강사가 왜 하필 할미꽃이냐며 웃었다.

대여섯 살 어렸을 때 이야기다. 내가 여섯남매에 막내였기 때문에 그때 이미 큰언니는 시집을 갔었다.

언니에게 내 나이 또래의 시누이가 있었다. 내가 언니 집에 놀러 가면 그가 내 동무가 되어 주었다
어느 봄날. 내 손을 잡고 들로 놀러 나갔다.
너른 들판을 누비며 두 마리 꽃사슴처럼 뛰놀았다. 언덕에 올랐다. 그때 그 언덕은 지금 생각해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양지바른 언덕이었다.
자주빛 꽃무리가 눈에 띄었다.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보송보송한 솜털에 자주빛 비단같은 꽃잎이 어린 내마음을 사로 잡았다. 처음 보는 꽃이다. 할미꽃이라고 친구가 말해 줬다.
아버지가 들려준 할미꽃 전설을 생각하며 꽃 앞에 엎드려 한참동안 드려다 보았다.

조심스레 어루만저 보기도 했다.


그때부터 할미꽃은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툭 하고 금방 튀어나와

또하나의 내 이름이 됐겠지.

지금의 나 할미꽃.

할미꽃이라는 별명이 아주 잘 어울린다.
자줏빛 꽃잎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하얀 꽃씨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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