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심연에 갇혀 숨도 못 쉬고 있던 것들이었다. 조심스레 하나 꺼내보았다.
오랜 세월에 쌓인 먼지를 털어 따듯한 볕에 내놓았다.
웅크리고 있던 것들이 활개를 펴고
‘나도’, ‘나도 ‘ 하며 손들고 나선다.
젊은 날의 나는, 어미로서 교사로서의 걸어 온 발걸음이 어설프고 거칠기만 했다.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모진 매를 들었고, 하지 말라고 한 행동을 했다고 어린 것을 대문 밖으로 발가벗겨 내쫓기도 했다.
교내에 웅변대회가 있던 날.
아들이 웅변대회에서도 수상해야 한다는 내 욕심으로 전날 연습을 호되게 시켰다.
대사를 혹시 잊으면 어쩌나 손에 땀을 쥐고 지켜 보고 있었다. 그다음, 그다음 대사가 내 입속에서 움직였다. 아들에게 전달이라도 하려는 듯이.
관중석에 앉은 내 엉덩이는 의자에 붙지 못하고 반쯤 떠 있었던 같다.
연단에 서서 힘찬 소리를 토해가던 아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피를 토해내듯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때, 내 간장은 타닥타닥 불꽃 튀며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내 기억의 필름은 거기서 끊긴다. 그 일이 있었던 이후 다시는 내 아이들을 어떤 경연장에도 내보내지 않았다.
어느 해 스승의 날. 제자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다.
“거짓말을 해서,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은 후로는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 글 한 줄이 무서운 방망이가 되어 내 가슴을 쳤다. 그 멍은 내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어있다.
편지에는 다른 말도 있었겠지만, 내 시선은 그 글 한 줄에서 멈췄던 것 같다.
편지를 읽던 내 마음은 정지되었고 가슴 속에서 방망이가 나를 쳐댔다.
초등학교 어린이를, 거짓말 좀 했다고 얼마나 호되게 꾸짖었으면 중학생이 되어서도 지워지지 않고 있을까.
지금 아흔을 넘긴 흐물어질대로 흐물어진 할미의 마음으로 반세기도 전 그때 일을 다시 조명해 본다.
눈가가 촉촉해지며 가슴이 아려온다.
그때 거짓말한 그들에게, 매 대신, 호된 꾸지람 대신, 발가벗겨 내쫓는 독기를 부리지 말걸. 포근하게 안아 주면서 “왜 그랬어?” 하고 부드러운 말을 건넸더라면, 그들도 그 나름대로 할 말이 있었을 텐테...
아무런 대꾸도 없이 벌겋게 달아오른 낯으로 씩씩대기만 하던 어린것들의 모습이 떠올라, 새삼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바르게 잘 키우겠다는 의욕만 앞세웠지, 어린것들의 여린 살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서툴고 거친 모정과 스승의 모습,
그 어설프고 거친 사랑의 표현을 말없이 감내하던 그 어린것들!
반세기도 넘는 옛날 일들을 꺼내 보면서, 지금 그들의 아픔을 내가 겪고 있다.
무서운 회초리가 되어 날카로운 날이 내 마음을 친다.
그때 회초리에 닿는 여린 살갗에 닿는 아픔. 맨 몸에 닿는 차가운 바람. 꺼지고 싶은 수치심. 무대 위에 서서 안간힘하는 무서운 고독.
신부님 앞에 고회하는 마음으로 부끄러운 내 모습을 지금 세상에 고백하며
미안하다는 말, 잘못했다는 말, 후회와 참회를 메아리로 보낸다.
가 닿을 길 없는 메아리,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를 자꾸만 허공에 띄운다.
조용히 기도해 본다. 그때 일이 내게만 남고, 그들에게는 잊혀져 있기를! 아픔이 사라져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