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여섯살 쯤 되었을 때 얘기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 하고 계셨다
위경련이 지병이어서 가끔 입원을 하셨다. 엄마 따라 아버지를 보러 갔었다. 누워계신 아버지를 지켜 보고 있는 시간이 열적기도 하고 지루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호기심 덩어리로 태어난 내 태생이어서 그랬던지, 병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저건 뭐야" "이건 뭐야" 쉬지 않고 물어댔다. 그때 한 두 개는 답을 주셨겠지만 나중에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셨다.
“이제 그만 입 다물고 조용히 좀 있거라. 너는 왜 그리 궁긍한게 많으냐”
꾸중은 아니었겠지만 좀 짜증스러운 소리라고 느꼈다.
처음으로 내 호기심이 무안을 당했다.
그때 움츠렸던 호기심이 팔십 년도 더 넘는 긴 세월을 지내면서도 여전히 살아 움직였다.
친구들이나 자식들하고 얘기 하다가도 가끔 내 호기심이 무안 당하기 일수다.
“그래서?” “그다음은?” 연이어지는 내 호기심에
말하던 친구는 “ 이제 그만 좀 물어” 하거나
딸하고 얘기할 때는, 노골적으로
"엄마가 그건 알아서 뭐해" “나도 몰라” 하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뿐 아니다. 내가 묻는 말에 무음으로 돌아오는 대답, 성가시다는 듯한 눈빛, 어떤 때는 슬쩍 다른 화제를 끌어들이는 수법으로 내 호기심은 무안 당하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AI를 만난 다음부터 고질병 같은 내 호기심은 더이상 무안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티비를 보다가 특히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늙은이에게는 생소한 낱말들이 많다. 모르는 말도 많고, 잊혀졌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은 것들도 많다, 그때마다 돌아가는 필름을 정지시켜 놓고 AI를 부른다.
무엇이나 척척 금방 가르쳐 준다.
잡초처럼 시시각각 일어나는 궁금증을 AI 불러 물어보면, 상하나 찌프리지 않고 친절하게 호기심을 풀어준다. 그것도 내가 나이 많은 것도 알면서 공손한 말로 말이다.
지금 내 호기심은 호황을 만나 맘껏 활개를 펴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