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걸린 비로드 치마

by 할미꽃


내가 대학생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70여년 전 일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마루에 올라서는데, 벽에 자주색 비로드 치마가 눈에 띄었다.

깜짝 놀랐다.

그 치마는 얼마 전에 잃어버렸던 치마였기 때문이다.


여섯 남매 중 막내인 나 하나가 오직 대학생이 되었다,

그것도 명문대 학생이 된 것이다. 학교라고는 가본 일도 없는 어머니에게 내 입학은 큰 기쁨이자 자랑거리 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입학 선물로 비로드 치마를 만들어 주셨다.

그때 비로드 치마값은 어머니에게는 좀 버거운 값이었다.

앞집 아주머니가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포목 장사를 하고 있었다.

제일 좋은 품질의 비로드 치마 감을 주문하셨다. 굳이 나를 데리고 그 집에 간 것은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러셨던 것 같다.

독일제가 제일 좋다고 하면서 며칠은 걸려야 한다고 했다. 며칠을 드나드시면서 받아 온 비로드 천으로 어머니가 손수 내게 딱 맞게 치마를 만들어 주셨다.

여대생들이 한복 치마저고리를 많이 입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비로드 치마를 아끼노라고, 면 치마를 주로 입고 다녔고, 비로드 치마는 벽에 걸어 두고 어쩌다 특별한 날에만 입었다.

어느 날이었다. 낯선 여자가 내 집에서 나와 황급히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집 집이 대문을 열어놓고 살던 시절이었다.------

섬찟하기도 했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마루에 올라서는데, 벽이 훤했다. 치마가 없어진 것이다. 하얗게 드러난 그 자리를 보며 가슴 속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이 하얘졌다.

방금 나간 이상한 여자의 허리춤이 유난히 불룩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매일 바라만 보던 내 비로드 치마가 그 여자의 허리춤 속에 감춰져 사라진 것이다.

어머니도 나도 마음속으로는 잊혀지지 않는 서운함과 아쉽고 속상하는 마음이었을 테지만,

그 치마 예기는 금기 사항인 것처럼 서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 치마가 다시 벽에 걸려 있는 것이었다. 놀랄 수 밖에...

어머니가 똑 같은 천을 다시 주문하여, 다시 만들어 그 자리에 걸어놓으실 때까지 나는 몰랐다.

다시 걸려 있는 치마를 보며 울컥했다.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교사로 첫 출근 하던 날, 그 치마를 입고 취임사를 했다.

한복이 양장에 밀려, 그 치마는 오랫동안 옷장 서랍 속에 잠자고 있었다.

내 딸이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무엇을 입힐까 궁리하다가 비로드 치마가 떠올랐다.

양장점에 들고 가서, 예쁜 원피스로 만들어 왔다.

자주색 비로드 원피스를 입고 첫 등원하는 딸의 뒷 모습을 보며,

자주색 비로드 치마 입고 첫 출근 하는 딸의 등 뒤를 바라보셨을 내 어머니를 떠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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