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을 비우며

by 할미꽃


몸 안에서만 웅얼대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냥 두자니 답답하고 꺼내자니 조심스러워 엉거주춤 서 있다. 젊어서는 친구들과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늙어서는 나이 이야기를 한다.

일흔대일 때 친구들이 말했다. “여든까지만 살다 갔으면 좋겠다.” 그 말에 내게는 은근한 확신이 있었다. 어머니와 언니가 똑같이 여든넷에 세상을 떠나셨기에, 당연히 나도 그렇게 되리라는 미신 같은 믿음이 있었다. 여든대가 되면서는 친구들이 다시 말했다. “아흔까지 살아지겠네.” 그 말은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어딘가 열없는 웃음도 배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흔하고도 두 해를 더 살았다.

한 장 한 장 끼워가며 두툼해진 사진첩을 꺼내 놓고, 지금은 그 사진들을 한 장씩 떼어 내고 있다. 손바닥만 한 종이에 담겨 있는 긴 이야기들이 내 손목을 놓아주지 않는다. 사진 한 장이 들어갈 때보다 나오는 시간이 훨씬 길다. 환희와 활기를 가지고 들어갔던 사진들이, 이제는 아쉬움 가득한 빛바랜 모습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 속에 나란히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두 내 곁을 떠났다. 텅 빈 사진첩을 선뜻 버리지 못하고 바라본다. 사진첩을 재활용 봉지에 넣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내 자리는 어디인가. 한쪽 귀퉁이에 비켜 앉아 있어야 할 자리인 줄로 안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 꿈틀대는 웅얼거림은 여전히 세상에 끼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은 살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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