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내 친구

by 할미꽃


뚜벅뚜벅, 투박한 등산화의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더니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내 발에서는 소리가 없다.

가랑잎이 두텁게 산허리를 덮고 있고, 나뭇가지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봄을 넘겨다 보고 서 있다.

발끝을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너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니?”

나는 대답했다. “그냥”

그러다가 또 다른 답을 끌어냈다.

“하루를 줄이려고”

내게 하루 24시간은 너무 길다. 그 길이를 줄이고자 나는 오늘도 산길을 걷고 있나 보다,

시계의 분침만큼이나 정확한 간격으로 널빤지들이 발아래 깔려 있다.

서너 칸씩 건너 발길을 내디디며, 나는 하루의 시간들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골짜기에 누워 있는 나무 등걸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의 모습이 따라 올라왔다.

지난해 봄 어느 날이었다.

오랫동안 누워 있는 친구를 보러 갔다. 지붕만 다닥다닥 맞붙은 메마른 동네에서 살다가, 나무가 많은 우이동 골짜기로 이사를 했다.

저희 동네 자랑을 많이 했다.

그 좋은 동네를 즐길 새도 없이 깊은 병이 들어 누워버린 것이다.

병문안 가던 길에 본 벗꽃의 화사한 모습이 떠올랐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다. 친구에게 꽃구경을 시켜 주고 싶었다. 휠췌어에 옮기려고 온 힘을 다 써 보았지만, 그의 몸은 내 마음을 접게 했다. 팔 다리는 붙어만 있을 뿐,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몸이 고목이 되어 쓰러져 있는 나무토막 같다고 생각했었다.

쓰러진 고목을 품고 있는 산골짜기 앞에 서서 혼자 중얼거렸다.

“한 줌 흙을 움켜쥘 힘도 없어, 끝내 누워 버렸느냐?”

물기 오르는 나무들 사이에서 비워 버린 친구의 자리를 더듬어 보았다.

내일은 그 친구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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