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속도

by 할미꽃

영화를 보다가, 너의 속도 라는 단어 가 내 머리속에 깊이 박혔다.

‘너의 속도?’

며칠 전 아들과 함께 산길에 올랐다.

“엄마, 왜 그렇게 빨리 걸어?” 아들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내 아이들은 할아비, 할미가 되었건만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 라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한없이 따듯해진다.

”내리막길에서는 저절로 가속이 붙어서 그래“ 여전히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며 답했다.

사실 그것은 위장된 답변이기도 했다.

어미는 아직도 건재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마음의 대변이었다.


오래전에, 운전을 배울 때 이야기다.

필기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았는데, 실기시험에서 떨어졌다.

언덕배기에서 급정차를 하라는 시험관의 지시가 떨어졌는데, 브레이크 밟는 속도가 늦었기 때문이다.

재시험 끝에 겨우 면허증을 땄던 어느 날, 언덕 위에서 차를 몰고 내려오는 데 차가 내 의지와는 달리 무섭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하마트면 큰일을 당할 뻔했다.

그때 핸들을 잡고 벌벌 떨던 장면이 떠오르면 지금도 오금이 저려온다.

이렇게 늙은이가 되었는데도 내 걸음은 여전히 빠르다.

옆에서 같이 걷던 딸애가 ”좀 천천히 가자“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도 나는 늘 저만치 앞서갔다가, 뒤돌아서서 친구들을 기다리곤 하였다.

‘어서 가서 애들 씻기고, 밥도 챙겨 먹여야지, 숙제도 봐 줘야지...’

마음이 늘 조급해서 길을 걷지 않고 뛰며 살아온 세월이 40여 년이다.


아직도 빠른 내 걸음걸이는 오랜 세월 동안 몸에 붙은 속도의 관성일 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과속을 하고 있는 것은 걸음걸이뿐만 아니다.

지금 나는 모든 속도를 늦추어, 뒷사람을 앞세워 보내며, 그들의 등 뒤에서 따듯한 박수를 쳐 주어야 할 시간이다. 인자한 미소와 함께.



조심스레 한구석에 있는 내게 눈길 보내 주시고 벗해주겠다고 해 주신 분들께 많이 많이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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