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에서 인용된 제목이다.
‘바다와 노인’에서는 산티아고가 낚시를 들고 바다로 갔다.
‘노인과 바다’에서는 할미꽃이 풀잎 배 하나 들고 바다로 간다.
아흔둘이라는 숫자에 주눅 들어, 보이지도 않는 종점을 응시하며 미리 죽어가고 있는 것 같은 삶이 나날이 이어져 가고 있었다.
무엇이라도 해 보고 싶은 욕구가 등잔불처럼 내 안에 켜져 있었다.
세상 속에 서서 아무리 두리번거려봐도 내가 끼어들 곳은 없었다.
어두컴컴한 내 오두막 안에 등잔불을 내려놓고 앉아 있다.
‘이것을 만들어 주면 증손자들이 좋아할 거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내 미소를 섞어가면서 인형을
뜨고 또 떴다 .
전자시대에 태어난 요즘 아이들은, 번쩍번쩍 빛을 발산하며 요란스럽게 움직여대는 것, 팔다리를 이리저리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제 마음대로 움직여 주는 놀이를 좋아했다.
슬그머니 몇 개 먼저 건너간 내 인형들은 상자에 담긴 채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맘껏 뜨고 또 떠가면서 쌓인 인형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 역시 나처럼 오두막 속으로 들어앉아 있어야만 했다.
집 안에 텅 비어 있던 방이, 인형의 집처럼, 혹은 동물원처럼 변해버렸다.
인형 놀이도 그렇게 나 혼자만의 일로 끝이 났다.
결국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 컴퓨터는 내 나이만큼이나 늙은이다.
그 속에는 내가 살아오면서 길어 올린 마음의 조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흩어져 있는 마음들을 모아 정리해봐야겠다는 새로운 “살거리”를 찾았다.
“살거리”라는 단어는 내가 지어낸 말이다. 먹을거리가 육신을 지탱하는 힘이라면, 마음을 지탱하는 힘에는 반드시 “살거리”가 필요하다.
시작할 곳을 찾아 서성이다가 브런치라는 거대한 바다를 만나게 된 것이다.
브런치가 내게, ‘이리 오라’고 손을 내밀 때,
‘내게 바다로 나갈 힘이 남아 있을까?‘
자문하며 내민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할미꽃은 그렇게 두려운 마음으로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바다 위에는 호화 유람선도 있고, 고층 여객선도 떠 간다.
늙은 나에게는 작은 배 한 척도 만들 힘조차 없다.
그저 길섶에서 주워온 잎사귀 하나로 풀잎배를 만들었을 뿐이다.
나는 바다 위에 그것을 띄워 놓고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서서 지켜보고 있다.
’바다가 받쳐주고 있겠지. 바람이 붙들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