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길가에서 사금파리 하나를 주워서 돌멩이로 깨고 돌바닥에 갈아가면서 동그란 접시를 만들고, 벽돌 밥상 위에 얹으며 소꿉놀이를 했다.
나는 지금, 살아 온 길에서 사금파리 같은 이야기 하나 주워서, 깎고 자르고 두드리며 글 한 조각을 만들어 널따란 글판 위에 올려놓으며 글놀이를 하고 있다.
사금파리는 아무리 깨고 다듬어도 예쁜 동그라미는 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린아이에게는 날만 새면 하고 놀던 즐거운 놀이였다.
글판 위에 올라 있는 내 글을 보며, 그 때 사금파리 접시같다는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작아진다.
내 글놀이의 꿈은 아주 오래 전에 시작 된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문예조회를 했었다.
전교 학생중에서 뽑힌 글을 조회 때, 본인이 전체 학생 앞에서 낭독하는 것이다.
어느 날 내 글이 뽑혀서 전체 학생들 앞에서 글을 낭독했다. 내 키는 같은 또래 아이들 보다 많이 작았다. 그때 단상에 있던 교탁은 높은 벽 같았다. 나는 옆으로 나서서 읽었다.
제목은 “잘못 찾은 엄마” 였다. 엄마를 찾아 나간 어린이가 저만치 가는 여인의 치맛자락만 보고 달려가 “엄마” 하고 치마폭에 얼굴을 묻었다.
“얘가 왜 이래?” 하는 차가운 말에 놀라, 치맛폭을 젖히고 나와 올려다보니 내 엄마가 아니었다. 그 때 무안함을 그린 내용이었다.
그것이 씨앗이 되었었던지, 내가 선생이 되었을 때, 매월 글짓기 대회를 열었고, 그 작품들을 매월 문예지로 엮어냈다.
그 때 있었던 감동적인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한 어린이 아버지가 문예 담당자인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 분은 교육계에서 정평이 나 있던 분이셨는데, 딸이 매월 받아오는 상장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방에 놓았다고 했다. 어떤 대회에서 받은 상보다 귀하고 진실한 상이라고 했다. 글에 대한 내 열정이 인정 받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그 가리개 이야기는 내가 글 사랑하는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듯, 글 앞에서 노인은 소꿉놀이하는 아이처럼 작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