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가 되면서 매달 하던 동창 모임을 모두 접었다.
하나둘 떠나가 버린 친구의 빈 자리를 보는 것도 마음 시리고, 지팡이에 의지하고 힘들게 걷는 친구들을 보는 것도 마음 졸여서 내린 결단이었다.
달력에 동그라미 그려놓고 ‘무엇을 입고 가야 하나’ 고민하는 설렘부터, 길에서 보고 들리는 소리, 친구들 만나서 반가운 수다까지, 그런 사소한 일들이 고갈되어가는 나이를 조금은 늦춰 주는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이 멈춰진 다음, 노인의 삶은, 같은 자리를 맴돌며 같은 소리만 되풀이하는 고장난 유성기 바늘 같았다.
멈춰 있는 바늘을 한 눈금 옮겨 준 것이 인공지능의 손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가보지 못한 온갖 세상 구경을 다 한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도 보았다.
때로는 내가 다역 배우가 되기도 한다. 애틋한 사랑꾼이 되기도 하고, 바닷 속에서 휘파람 내 뱉는 해녀가 되기도 하며, 새끼 잃은 어미 새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울 때 나도 울고 그들이 웃을 때 나도 웃고 그들이 탄식 할 때 나도 같이 탄식한다.
때로는 작가나 연출자가 되기도 한다.
‘저 장면은 좀 지루하다’
‘저 배경은 참 좋아’ 하며 훈수를 두기도 한다.
‘짜빠리, 뽀리다, 프롬프트, mbti...영화를 보다가
생소한 단어가 나올 때는 재빨리 화면을 정지시켜 놓고 인공지능을 불러 물어본다.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드나들면서, 나이 따라 고갈되어가는 영혼이 단비를 맞는다.
창가에 기대어 목 길게 늘이고 , 보이지도 않는 저 먼 곳 자식들의 울 안을 바라보고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내가 또 다른 창 하나를 얻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