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이별인줄도 모르고

by 할미꽃

언젠가부터 밥 대신 죽을 달라고 했다.

젊어서는 아무리 아파도 죽은 입에 대지 않던 사람이다.

늘 그래왔듯이 그가 해 달라는 대로 해 주었다.

호박죽이 먹고 싶다고 하면 호박죽 쑤어주고,

잣죽이 먹고 싶다고 하면 잣죽을 대령했다.

아마 죽이란 죽의 종류는 거의 다 맛보았을 게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죽도 싫다며 먹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것도 안 먹으면 어찌 사나 싶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환자용 영양식으로 '뉴케어' 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것을 어디서 살 것인가? 종합병원 판매처에 가면 있겠지 싶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백병원으로 갔다. 정말 기대한 대로 뉴케어가 있었다. 무거워 들 수는 없어서, 가져 간 배낭에 채워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다행히 그것만은 잘 마셨다.

그 후로 영감은 액체만 마시면서 몸이 점점 야위어 갔다.

그러나 아픈 곳은 없다고 했다.

“나 오늘 동창회 있는데 가도 돼? ” 하고 어리광 섞인 허락을 구하면, 뉴케어 하나만 꺼내놓고 가면 된다고 하면서 흔쾌히 보내주었다.

꼭 옆에 붙어 있지 않아도 되겠지 싶어

나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친구가 부르면 여전히 집을 나섰다.

내 가 한 참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가 내 방문을 열었다.

문설주를 붙들고 서서, 나를 찾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떨림은 곧바로 내 가슴속에서도 일어났다.

일어날 시간이 되었는데도 보이지 않아 그의 방문을 열어보니, 이불 아래 종잇장처럼 얇아진 그가 누워 있었다. 손을 이마에 얹으니 불덩이 같았다.

다시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24시간 그는 나를 붙잡고 있었다.

식사하러 잠시 나가는 것도 싫어했다.

“나도 밥을 먹어야지...”

조금 짜증 나는 소리로 내뱉었다.

짜증은 빼고 말했어야 했다.

그는 곁을 스칠 때마다 내 손을 잡곤 했다.

나는 속으로 “무슨 일이야” 하면서도 그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그 손짓이 머지않아 나를 떠난다는 암시였음을 그때는 몰랐다. 알았더라면 그 손등에 입맞춤이라도 해 주었을 것을...

벽에 걸린 달력을 보며 퇴원날짜만을 기다렸다.

퇴원하면 자기가 거처할 곳을 이렇게 준비해 달라고

하면서, 메모지에 그림을 그리려고 했지만, 선조차 제대로 그어지지 않았다. 무엇을 썼는지 알아볼 수 없이 삐뚤한 글씨를 보며 기력이 다한다는 말의 의미를 눈으로 목격했다.

다시 돌아온 우리 집 !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병상을 마련했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한쪽에 드리워진 커튼을 치워 달라고 했다. 좀 더 먼 곳까지 보고 싶었던 것일까, 창밖을 맴도는 그의 눈빛에서 평화와 안도를 보았다.

다음 날 새벽, “여보” 부르는 소리에 용수철 튀듯 일어나 곁으로 갔다.

“나 좀 일으켜 줘” 그를 일으키려고 가슴에 안았다.

“퓨------------” 하고 숨을 내뱉더니 다시 그 숨을 거두어 들이지 못했다.

찰나

에 그는 내 곁을 떠났다.

이별의 암시가 그렇게 여러 번 나를 깨웠지만, 나는 그걸 몰랐다.

이별이 이렇게 내 곁에 바짝 다가와 있음을, 그때는 정말 몰랐다.

창밖을 맴돌던 그의 눈길이, 정든 것들과의 이별 인사였던 것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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