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바삐 돌아가고 있는데, 갈래머리를 한 딸애가 내게 달려들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 애들이 자꾸만 나보고 이상한 아이래.“ 말하는 그 눈에 서러움이 가득했다. 밖에서는 우는 소리도 들렸다. 황급히 뛰어나가 보니 작은아들이 길가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두 아이를 부둥켜안고 어쩔 줄을 몰랐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아픔이었다.
번쩍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구나.
살아가야 하는 길이 오직 이 길뿐이라 믿으며, 곁눈질 한 번 못 하고 보낸 시간들이었다. 그 뒤안길에서 내 아이들은 저토록 울고 있었나 보다.
그애들이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복된 삶을 누리고 있는데 이 무슨 해괴한 꿈일까. 사위는 깜깜한 밤이다. 다행이라는 안도는 잠시, 꿈속의 통증은 생생한 잔상이 되어 까만 밤 속에 눌러앉아 있다. 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해야 솟아라. 어서어서 솟아라.“
어둠에서 도망치고 싶은 본능이 이 한 구절로 튀어 나왔다. 불쑥 솟은 이 한마디는 개울가에 사는 아이들이 부르던 동요의 한 구절이다. 어서어서 날이 밝아야 개울물에 뛰어들어 물장구치며 놀 수 있듯이, 나는 이 어둠이 가시고 날이 밝아야 나의 일상으로 도망칠 수 있다.
‘두 코 뜨고 한 코 늘리고...’ ‘다섯 코마다 한 코씩 줄이고...’ ‘열 단은 늘리고 줄임 없이 그냥 뜨고.’
늘리고 줄이며 한 코 한 코 세어 가며 하루를 보낸다. 좁쌀 알만한 실고리를 엮어가노라면 예쁜 꽃송이도 피어나고, 귀여운 인형의 팔다리가 자라기도 한다. 촘촘하게 짜여가는 실타래는 잡념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어서 해가 솟아서 실바구니를 꺼내러 가야지.
뜨개질하며 보내는 내 한낮의 긴 시간은, 아이들이 개울물에서 물장구치며 노는 그 시간과 같다.
"해야 솟아라, 어서어서 솟아라."
내게 떠오른 이 구절은 놀이를 하러 가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절박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외침이다. 해가 솟아야 내가 도망칠 수 있다. 까만 밤에서 노랑, 빨강 색색이 아롱지는 실타래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