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늘 그자리에 있었다.

by 할미꽃

오늘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마음을 오래 붙잡는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 타일러는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방황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지냈다.

형의 죽음, 여동생이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 당하는 일, 어머니가 다른 남자에게로 간 일까지도 모두 일만 아는 무정한 아버지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타일러는 금수저를 버리고 흙탕물 속에서 술과 담배로 살았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동생의 미술 전시장에는 꼭 나타나리라고 굳게 믿었다. 끝내 나타나지 않자, 아버지 회사로 찾아가 중역회의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 씩씩거리며 마구 분노를 터뜨렸다.

아버지가 일어났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상실의 아픔은 네 가슴 속에만 있는 줄 아느냐?!”

영화 속에서 그 아버지가 말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는 과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철통같이 보이던 그 가슴속에 꾹꾹 눌러 참았던 아픔이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그의 외침과 함께 입속에서 튀어나오는 침방울이 핏방울처럼 보였다.

그의 외침은 화살처럼 내 가슴으로 날아와 박혔다.

내가 십대 철부지였을 때, 나도 어머니에게 그런 분노를 일으키게 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공산당에게 납치되어 가셨고, 가난이란 짐을 안고 여러 자식을 거느리고 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돈을 달라고 졸라댔다.

내 어머니는 과묵하셔서 말이 적으신 분이셨다.

바느질 하시던 손으로 옆에 짚이는 것을 집어 마당으로 내던지며 말씀하셨다.

“주고 싶지 않아서 못 주는 줄 아니?!”

가슴이 뜨끔했었다.


타일러도 아버지의 그 외침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깨져버린다.

아버지의 소망대로 마음을 열고 아버지 회사로 복귀했지만 운명은 가혹하게도 그를 데려가 버렸다.


가장 가까운 부모 자식 사이지만 말없이 서로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나는 지금, 내 어머니의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어미가 되었다.

언젠가 아들이 왔다가 가면서 말 했다.

“엄마, 말 안 해도 내 마음 알지.”

나는 아들의 등 뒤에 대고 마음 속으로 답했다.

‘그래, 너도 내가 말 안 해도 내마음 알겠지’

아들과 나 사이의 ‘묵계(黙契)’다.


사랑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늦게 알아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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