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같은 하루

by 할미꽃

눈을 뜬다.

하루가 열린다.

하얀 공백이 나를 맞이한다.

하얀 공백 위에 오늘 할 일을 더듬어 보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 빈자리에, 기억의 환상들이 밀물처럼 밀고 들어온다.


초등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 대학 친구, 직장 친구들까지 뒤섞여 파티를 준비한다.

모든 것을 빠짐없이 갖춰 놓았는데 정작 파티는 열리지 않고 허허로운 빈자리만 맴돈다.

그때 직장 상사가 나타나 이 파티 책임자가 누구냐고 호통을 친다. 마련해 놓은 음식들을 마구 헤집어 못쓰게 만들어 놓는다. 한쪽에서는 망령 난 노인 쫓아내라고 소동을 피운다.

그때 저쪽에서 누군가 급히 나를 부른다. 황급히 달려가 보니, 한 사람이 누운 채로, 한 팔을 힘겹게 치켜들고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나는 그를 끌어안고 굳어있는 손발을 주무른다. 장작개비처럼 뻣뻣하던 팔다리가 서서히 풀리고 그의 체온이 내 볼에 닿는다.


“따뜻하다”


그 온기는 꿈의 것도 아니고 현실의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꿈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지금 병석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친구의 부름이었을까,

아니면 며칠 전에, 친구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내 마음 한편에 작은 가시로 남아 있기 때문일까.

덤처럼 주어진 하루.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은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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