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by 할미꽃

좁은 공간에 하나둘 늘어가던 화분이 미워서 눈길을 주지 않았었다.

영감이 늙으막에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게 되자, 허전한 마음에서였던지 화분 늘리는 일, 화분에 물 주고 궂은 잎 떼어주는 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 번은, 자기 키만한 화분을 사들고 들어오며
내게 도움의 손길을 청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분에게 눈총을 주었다.

그가 가버리자 “사람이 없어졌는데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애꿎은 마음으로 사정없이 화분들을 내쳤다.

좁은 공간에 가득히 들어찬 화분들이 부담스럽기만 하더니, 모두 없애고 나서는, 좁은 집안이 퀭하니 허전하고 넓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하나둘 사들인 화분이 몇 개 된다.


멀리 사는 친구가, 꽃 색이 예쁜 희귀 품종이라며 제라늄 한 포기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가운데 손가락보다 좀 더 클까 말까 하는 것이 종이컵 속에 담겨 신문지를 둘둘 말고 작은 상자 속에 실려 왔다.

정성껏 싸 보낸 친구의 마음이 소중하기도 했고, 여리디여린 어린 몸으로 소포가 되어 먼 길 건너온 것이 안스러워 유독 눈길이 더 갔다.

행여 쓰러질까봐 부목을 꽂아 기대도록 해 주었다. 잎사귀 하나하나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먼지라도 묻었을까 살펴보곤 한다. 그러다가 잎사귀 하나에 노락색 손톱자국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묻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상처였다. 덜컥 걱정부터 앞섰다. 요즘 누구나 기대고 있는 만물박사에게 물어서 처방을 받아냈다. 그리고

곧바로 약을 구해 치료해 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베란다로 가서 인사를 하는데, 가지 사이에 콩알 만한 솜뭉치가 보였다.

'곰팡이가 끼었나'

놀라서 다시 눈을 비비며 자세히 드려다보니 갖자란 가지에 나 있는 솜털이었다.


돌아가는 해를 따라 자리를 옮겨주면서, 햇볕을 다른 것들 보다 더 많이 받게 해 주기도 한다.


종이컵 속에 들어앉아 내게로 온 것이, 지금은 팔뚝 반 만큼 컸다.

그런데 다른 화분의 진초록 이파리들 보다 색이 눈에 띄게 연하다. 건강한 아이들 속에 병약한 아이의 창백한 얼굴을 보는 것 같아 여전히 마음이 더 쓰인다.

사진을 찍어서 또 만물박사에게 보이며 진찰을 받았다. 괜찮다고 했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일 뿐이라고 했다.


아픈 손가락 같은 화분이 예쁜 색의 꽃을 피우며 내 마음의 편애에 조용히 답해 줄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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