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개장과 원수 진 사이

엄마가 요리를 하면 벌어지는 일

by 전태희

1월 1일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직장인에게는 신정과 주말이 합쳐져 3일 연휴가 생겼고, 눈치껏 연휴에 맞물려 연차를 사용하면 꿈만 같은 4일의 황금연휴가 만들어진다. 나는 눈치싸움에 성공했고 이 기쁜 소식을 가족 단톡 방에 제일 먼저 알렸다.


[나 - 나 연차 썼어!]

[오빠 - 오 ㅊㅋㅊㅋ]

[박여사님 - 4일 쉬는 겨?

집에 먹을 거리가 없는데...

너 좋아하는 육개장 해야겠다.]


이게 이 사건의 발단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신축년 새해를 떡국이 아닌 육개장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엄마의 육개장

엄마의 육개장은 시중에 파는 육개장과는 차이점이 많다. 당면도 들어가지 않고, 계란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채식을 하는 비건이라던가, 가난해서 고기를 살 돈이 없다던가 하는 그런 종류의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엄마의 스타일인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육개장이란 자고로 많이 끓여야 깊은 맛이 우러난다."라는 엄마의 철학이다. 얼마나 많이 끓이냐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만백성을 먹여 살릴 만한 양이다.



하지만 만백성에게 자랑스럽게 선보일 만큼 정말 맛으로는 으뜸이다. 고기를 넣지 않아 깔끔한 맛이 일품인 엄마표 육개장은 끓이면 끓일수록 깊은 맛이 더해진다. 대파와 양파의 단맛이 극단으로 끌어 오른 3일쯤 지난 육개장이 최고의 맛 이리다. 오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중에 나온 육개장이 불량식품의 맛이라면, 엄마의 육개장은 집밥의 느낌이 물씬 난다고 한다. 그래서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는 맛이라고 한다.






엄마의 육개장 사태로 인하여 엄마에 대한 수많은 의문점이 생긴다. 대체 저런 솥은 우리 집 어디에 두셨던 걸까. 저렇게 큰 솥이 있었다면 내가 몰랐을 리 없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 집에 웜홀이 있었던가. 해르미온느의 탐지 불능 늘이기 마법이 걸려있는 가방이 있었던 걸까 하는 재밌는 상상도 해본다.


엄마는 이 동네 백과사전이 아닐까. 엄마는 육개장을 위해 동네 이곳저곳 채소가게를 돌아다니셨다. 대파는 미라네 채소가게에서 파는 게 제일 단맛이 좋다고 하셨고, 양파는 송희네 주말농장 밭에서 구해온다. 한 동네에서 20년을 넘게 사니, 엄마는 동네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음식 식재료들을 목적에 따라 가장 맛있고, 저렴하게 구매하는 방법에 대하여 책을 써도 시리즈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의문은 왜 황금연휴를 맞이하여 만든 음식이 하필 육개장이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엄마는 "네가 좋아하니까"라고 하신다. 엄마는 10년이 훌쩍 지난 내 중학생 시절 취향을 아직도 기억하시고 계셨던 거다. 지금은 아니지만 엄마의 사랑이 느껴져 불평 없이 육개장을 먹는다. 아니 엄마의 사랑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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