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맹신하지 않는 사람
커피 없는 사주카페에서
나는 사주를 믿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지만 퇴사를 앞두고 심란한 마음에, 친구들과 영등포의 어느 큰 길가 2층에 위치한 사주카페에 갔다. 가격은 30분에 3만 원. (당시) 직장인의 지갑을 열기에 그리 부담이 되는 가격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젊으신 여성분이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리를 '선생님'이라 칭하던 사주카페 선생님은 연애, 이직, 사업, 취업, 결혼, 전체적인 기운 등등 30분 동안 꽤나 다방면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주를 1~2년에 한 번씩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 매번 볼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도 있고 새로운 이야기도 있다만, 이번 사주는 굉장히 개성이 넘쳤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들을 풀자면, 나는 명예와 돈을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동업을 해도 안되고(나의 돈 욕심에 싸움이 난다나), 남자를 볼 때도 매우 까다로울 것이라고 했다. 나이 먹어서는 짠순이가 될 것이고, 로또 맞으면 건강을 잃게 되니 로또는 하지 말고, 공부운이 있으니 욕심을 내어 책상에 다리를 묶어 놓고 공부를 하다가 결혼은 아주 많이 늦게 하란다.
"얼마 나요..? 혹시 마흔도 넘어야 하나요?"
"네... 많이 늦게요."
나의 퍼석퍼석한 연애운과 결혼운은 두고두고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나는 사주를 믿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 친구들을 만날 때도, 오랜만에 지인을 만날 때도 입버릇처럼 계속 "사주에서 말이야."를 반복하고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대학교 동기 언니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한참 맛있는 것을 먹고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중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주에서 말이야~"를 남발했나 보다. 결국 자리가 파하고 헤어지기 전에 언니는 징글징글하다는 듯이 대체 그 용한 사주카페가 어디니? 라며 소개를 해달라고 했다.
또는 사주가 하나의 핑곗거리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 집안 행사로 인하여 부득이 친척들이 지방에서 모인 적이 있었다. (수도권 코로나 4단계 격상 이전의 일이다.) 나의 체감 나이는 아직도 교복을 입은 학생 같은데, 슬프게도 어른들이 보기에는 현실 나이보다 더 많아 보이나 보다. 내가 얼마 전 백수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시곤 '언제 결혼을 하니, 만나는 사람은 있니'라며 다음 레벨의 질문을 쏟아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머릿속으로 순간 번뜩하며 사주가 떠올랐고, 나의 사주 썰을 풀어버렸다. 사주가 그렇다네요, 인생이 제 뜻대로 되나요, 뭐 어쩌겠어요...
나는 사주를 믿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지만 이번에 사주를 보고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후련함이었다. 그간 사회적 나이에서 한참이나 뒤떨어진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항상 고민이었는데, '그냥 너의 사주가 그렇단다 어쩌겠니?' 하고 위로와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 같았다. 대학교를 입학하고, 졸업 후 취업을 하고, 이 나이에는 이 정도의 돈을 모아야 하고, 회사는 몇 년차여야 하고, 직급은 무엇이어야 하고, 이때쯤에는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해.라는 사회적인 숙제를 늘 해결해야 할 것처럼 살았다. 그런 부담감에 살다가 이번에 퇴사를 하면서 또다시 사회적 숙제를 틀려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일인 양 심적으로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꼭 모범생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 늘 정답인 것은 없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이 오롯이 내가 된다. 나는 사주를 믿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지만, 내 고리타분한 편견보다 사주가 더 트렌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앞으로 모토를 바꿔보려 한다. 나는 사주 맹신론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