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100대 명산 그 첫 번째
새해 들어 그동안 늘 마음만 먹었던 100대 명산을 돌아보기로 했다. 1년에 20개 정도 오른다면 약 5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으리라.
그중에서 울산 인근 영남알프스 9봉 중 가지산, 신불산, 재약산, 운문산과 경주 남산은 제외하고 95개 산을 둘러볼 계획이다.
그 첫 시작을 경남 양산시에 있는 천성산으로 정했다.
산에 가기 전 산림청에서 올려놓은 지도를 보니 여긴 내가 알고 있던 천성산이 아니었다. 또 천성산에 대한 설명과 지도도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지도가 잘못된 듯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천성산 등산 루트를 살펴보니 홍룡사를 지나 정상으로 올라 원효암을 거쳐 편백나무 숲으로 내려오는 루트가 괜찮을 것 같았다.
겨울 아침 때문인지 사람도 없고, 산그늘에 갇힌 계곡은 호젓하니 참 좋았다.
주차장에서 포장길로 조금 올라가니 새롭게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일주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일주문이 옛날에 세워졌다면 길은 자연스레 일주문으로 향했을 것이나 근래에 세워진 탓에 일주문은 차의 왕래에 방해되지 않으려 길에서 비켜서 있는 것이 영 보기에 안쓰럽다. 저러면 오롯이 한 생각이 아니지 않은가.
절집 물건은 뭐니 뭐니 해도 세월의 무게를 묵묵히 참고 견디며 "보살님아 인생 별거 없소, 꾹꾹 참고 살아보소"라고 말해 주듯 좀 낡아야 제맛이다.
아쉬운 일주문을 뒤로하고 조금 더 오르니 아치교 앞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산신각 그리고 계곡 위쪽에 좌정하고 있는 불상이 겨울의 찬 바람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산신각 앞으로 난 계단길을 돌아 오르니 폭포 옆 바위틈에 관음전이 있다. 당장이라도 한 여인이 치성으로 기도드리고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다.
겨울 탓인지 아님 공사 탓인지 알지 못하나 수량이 줄어 빈약한 폭포가 다소 아쉽기는 했으나, 위태롭게 깎아진 절벽 아래 자리 잡은 관음전과 폭포는 그 자체만으로도 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난 기독교 세례교인이다. 아내는 딱히 종교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별도의 종교가 없으면 대부분 불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내와 석가탄신일에 같이 절 밥 먹으러 가기도 했으니 마음으론 불교라 해도 될듯하다.
처음 아내를 보내고 얼마 뒤, 영축산 산행길에 들른 통도사 극락전에서 부처님께 아내의 천도를 기원하는 삼배를 올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홍룡사 관음전 처마 밑에서 '왜 나는 아내가 믿는 신에게 마음 다하여 천도를 바라는 기도를 안 했나' 다시금 후회가 밀려들었다. 나를 만나 고생만 하고 떠난 사람을 그것 하나 해주지 못했구나 하는 후회로 온몸의 기운이 쭉 빠졌다. 여기 더 있다간 함께한 친구에게 못 볼 꼴 보이겠다 싶어 서둘러 산행을 재촉했다.
홍룡사 경내에서 좌측으로 돌아가야 애초 계획했던 길이었으나, 서둘러 절을 빠져나올 생각에 일주문 옆 등산로 표지판을 본 기억이 나 그쪽으로 무작정 올라갔다.
펑퍼짐한 오르막은 끝날 것 같으면서 돌아서면 오르막, 돌아서면 또 오르막이다. 한참을 걷다 저 멀리 눈앞에 펼쳐진 화엄늪은 시원함을 넘어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하다.
화엄늪 보호 지역에 다다랐을 무렵 홍룡사 경내에서 보았던 등산객들과 마주쳤다. 이들은 우리가 처음 가려던 그곳으로 올라왔나 보다. 우리는 그들 쪽으로 그들은 우리 쪽으로 서로 스쳐 지나갔다. 친구와 나는 화엄늪의 억새 군락을 눈 시리도록 보고, 뒤돌아 천성산 정상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좀 전에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이쪽엔 정상으로 가는 길이 없는 것 같은데 선생님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우리는 홍룡사에 왔고 그쪽은 정상 가는 길이 없는 것 같은데요."
"여기 지뢰 지역 철조망 뒤로 사람 다닌 길만 따라갑시다. 사람 다닌 길은 지뢰 없겠지."
우리는 이때부터 전우가 되어 조심조심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조금 더 가다 또 한 사람을 만났다. 역시 죽는 것도 여럿이 같이 죽으면 겁도 안 나는 것 같다. 하루빨리 지뢰제거 작업이 끝나 편안하게 천성산을 즐길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가슴 쫄깃한 체험을 끝으로 천성산 정상에 도착했다. 큼지막한 정상석과 함께 쌓다 만 돌탑인지 쌓는 중인지 알 수 없는 돌탑, 그 앞에 녹슨 리어카. 그리고 평화의 탑이란 나무 팻말. 여긴 휴전선 일대도 아니고 따뜻한 남쪽 후방 너무나 평화로운 이곳에서 평화의 탑을 쌓고 있었을 병사들 그리고 그들의 고단함을 상징하는 녹슨 리어카. 나도 군 시절 전투 진지 공사에서 뿌셔뜨린 삽이 몇 개며 곡괭이가 또 몇 개였던가. 옛일은 힘든 것도 기쁜 것도 모두를 '그땐 좋았지'라는 감정으로만 남겨두는 것 같다.
여기서 한반도 평화가 시작된다는 거창한 구호를 뒤로하고 원효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원효스님이 이곳에서 천명의 스님을 깨우쳤다는 천성산의 유래와 이곳에서 한반도 평화가 시작된다는 말은 그 스케일에서 막상막하다 싶어 웃음이 났다.
한반도 평화와 천명 득도의 시원인 원효암에서 커피 한잔 마셨다.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도 젓갈을 먹을 수 있다 했던가. 절 입구에 서성이다 어떤 분이 자기 일행에게 저기 가서 커피 한잔하잔다. 나도 얼른 따라갔다. 알아서 시주함에 돈 넣고 준비된 뜨거운 물에 커피 믹서 타서 먹으면 되는 완전 자율 커피방이다. 시주함을 보니 천 원짜리가 가득하다. 나도 천 원 넣고 친구와 커피 한 잔씩. "좋다!."
내 뒤편 대웅전 안에선 어느 분의 천도를 바라는 제라도 드리는지 스님이 열심이다. 내 앞은 절집에서 일하시는 분이 고달픈 모습으로 화목으로 쓸 나무를 연신 쪼개고 있다.
속세나 이곳 절 세상이나 사람 사는 곳은 모두 같나 보다. 누구는 깨끗한 승복 입고, 존경받고, 염불 외고, 인사 듣고, 누구는 온통 옷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무 쪼개고, 절 마당 쓸고, 욕먹고. 저분을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절 마당은 또 왜 이리 깨끗이 비질을 했누. 마음 아프게.
원효암에서 편백나무 숲을 거쳐 홍룡교 앞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이젠 주차장에 제법 차가 많다.
거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자 시작한 100대 명산 오르기. 그 첫걸음 천성산 산행은 산행 그 이상의 묵직한 물음을 내게 던져 준다.
그렇게 그렇게 한 오 년 지나면 내 나이도 어느덧 육십 줄에 들어설 것이고, 그 나이에 무슨 욕망과 번뇌가 있으리오. 그저 모두가 흘러가는 것을. 나 또한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 내 님이 날 데리러 오겠지. 그때 오늘 화엄늪의 끝없이 펼쳐진 억새밭 같은 초장을 내 님과 두 손 꼭 잡고 그동안 못다 한 우리 이야기할 그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