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덩이 앞에서 가난했던 사랑

기계보다 단단한 삶, 그 안의 사랑

by 강동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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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겸은 20대 중반 무렵부터 중소기업 기계설비 업체에 들어가 손재주와 성실함으로 절단, 용접, 가공, 조립, 시운전에 이르기까지 기계 제작 전 과정을 익혔다. 도면을 해석하고 구조를 설계하는 능력까지 갖춘 그는, 현장에서 인정받는 기계설비 엔지니어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도면 한 장을 앞에 두고 철판을 자르며 시작된 하루는, 산소 용접기의 불꽃 속에서 구슬땀으로 이어졌다. 기계의 프레임을 짜고, 배선을 연결하며 시운전을 통해 기계를 완성하는 모든 과정은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자신이 만든 프레스 기계가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때마다, 대겸은 뿌듯함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선배가 대겸에게 말했다.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해. 손으로 한 만큼 성실하게 돌아가지.”


그 말은 대겸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허투루 배운 기술은 없었고, 현장은 언제나 정직한 땀의 값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계가 정직하다 해도, 그 기계 앞에 선 사람의 마음까지 반드시 정직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입사 5년, 어느새 20대 후반에 접어든 대겸은 일에 익숙해졌지만 가족을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무거웠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홀로 일군 집, 위로 누나 셋, 아래로 동생 둘. 대겸은 조용히 가족의 기둥이 되어 버텼다. 그러나 아무도 그 기둥이 얼마나 자주 금이 가고, 눈물로 보수를 해왔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셋째 누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대겸이도 이제 나이인데… 장가 생각은 안 해봤어?”


그날,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셋째 누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겸이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장가 생각은 안 해봤어?”

“그러게 말이야. 스물아홉이면 혼자 살 나이는 아니잖아.”

둘째 누나도 거들었다.그 말에 대겸의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의 삶에 들어설 틈이 없었다.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 감정은 늘 뒷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무렵, 누나의 소개로 한 여자를 만났다. 차분한 말투에 환한 눈웃음,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대겸은 그 웃음 앞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내려놓았다. 밥을 천천히 씹는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단단해 보였고, 바람 부는 날에도 곁을 지켜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어머님도 연세 있으신데, 며느리 손이 들어와야지. 살림도 좀 나아지고.”


대겸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기에 결혼이란 단어가 낯설기만 했다. 자기 하나 건사하기도 빠듯했던 시간들 속에서, 사랑을 꿈꿀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누나들의 걱정과 어머니의 깊은 눈빛은 그에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그 무렵, 누나의 소개로 이웃 동네 아가씨를 만나게 되었다. 차분한 말투와 환한 눈웃음이 인상적인 그녀. 지금의 ‘애들 엄마’였다. 세 번쯤 만났을 때, 대겸은 결심했다. 누군가는 요즘 누가 세 번 만나고 결혼하냐고 했지만, 그에겐 설렘보다 신뢰가 필요했다. 삶을 함께 견뎌낼 사람, 그 하나면 충분했다. 결혼은 사랑이었고 동시에 책임이었다. 하지만 그 책임은 그를 평화롭게 만들었다.

“우리, 밥 먹고 산책할까요?”


처음 만남은 짧고 조용했지만, 어딘가 마음이 편안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긴 대화보다 짧은 미소 하나, 조심스레 내민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오래 가슴에 남았다.


“요즘 누가 세 번 만나고 결혼하냐”는 말도 있었지만, 대겸은 오히려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화려한 연애보다 필요한 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신뢰였다. 대겸에게 결혼은 설렘보다 책임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이, 오히려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결혼을 결심한 것은 지친 내 삶에 대한 안신척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삶을 함께 지고 갈 ‘동행’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결혼식 날, 하객들 앞에 선 어머니는 조용히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대겸이, 이제야 자기 집도 생기고, 평생 함께할 사람도 생겼네… 잘 살아라.”

그 한마디에 대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결혼 후에도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벽이면 여전히 작업장으로 향했고, 기계와 씨름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퇴근 후 집 문을 열면 따뜻한 밥 냄새가 그를 맞았고, 기다리는 아내가 있었다.


“수고했어요, 여보”


라는 짧은 인사와 조용한 웃음만으로도 대겸은 다시 힘을 얻었다.


대겸은 더 이상 쇠붙이만 다루는 기술자가 아니였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사랑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주인공이 되었다.


쇳소리가 가득한 대겸의 삶에 따뜻한 숨결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겸이의 청춘은 기계의 열기와 사람의 온기가 핏덩이처럼 뒤섞인 시간 속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대겸의 삶은 기계처럼 단단하지만, 그 안에 피어난 사랑은 조용히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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