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화상을 입고 돈 벌이 못한 못난 가장의 삶

책임의 무게를 견뎌온 날들..

by 강동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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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함께 대겸은 낮에는 일터로, 밤에는 고등학교로 향하는 고된 하루를 시작했다. 학업을 중단했던 고등학교를 마저 다니겠다는 굳은 결심은, 결혼과 동시에 무게를 더한 삶의 짐과 맞물려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학교로 향하는 길.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머릿속은 온통 내일의 업무와 아이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단한 나날 속에 큰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벅차오르는 기쁨이자, 이제부터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의 서곡처럼 들려왔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둘째 아이까지 태어났다. 두 아들. 가슴 벅차지만 동시에 막막했다. 야간고등학교 졸업장이 그의 손에 쥐어졌을 때, 대겸은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배우는 것에 대한 갈망보다, 가족을 위한 헌신의 상징 같았다.


졸업 후, 그는 새로운 직장에 입사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기계설비 출장 업무가 시작됐다. 한집안의 가장이자 아빠,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는 집을 자주 비웠고 아이들은 어느새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아이들은 자라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는 시어머니와 함께 두 아들을 돌보며 묵묵히 삶을 지탱해주었다.


시간은 흐르고, 여러 차례의 이사 끝에 가정은 부산에서 양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터전에서 대겸은 또다시 공장 공무과 엔지니어로 근무하게 되었고, 회사 내 부서 이동과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막내 동생까지 같은 회사에 입사하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사고가 찾아왔다. 고속도로에서 회사 동료들과의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탑승한 봉고차가 전복됐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차량은 폐차 처리가 되었고, 아찔한 기억은 오래도록 대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야간 근무 중,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났다. 기름이 묻어있던 용접 동에서 순간적으로 불이 붙어, 대겸은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화염 속에서 혼자 물통을 들고 뛰쳐나온 그의 몸은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밤늦게 119에 실려 양산 병원으로, 그리고 다시 부산의 대형 병원으로 이송됐다.

"눈을 뜨면 미라가 될 수도 있다고 의사 말했다."


의사의 말에 가족은 무너졌다. 애들 엄마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대겸의 어머니는 어린 손자들을 돌보며 애를 태웠다.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두 아이들은 “우리 엄마, 아빠는 병원에 있어요”라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 말에 마음이 찢어졌다. 학교에서 작은 마음으로 쌀과 간식이 지원 될 만큼, 가족은 한계까지 내몰리고 있다.


병원 생활이 약 11개월의 입원.


1인실, 시작으로 6인실까지 병실을 이동 했다. 대겸이 몸전체 70% 이상의 전신 3도 화상. 수많은 피부 이식과 재활치료. 하지만 대겸은 버텼다.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마침내, 다시 걷게 되었고, 얼굴도 회복의 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퇴원 후, 그는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몸과 마음은 여전히 온전하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책임의 자리에 선 것이다. 가족을 위해, 두 아들을 위해, 대겸은 묵묵히 자기 몫의 삶을 살아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게 대겸은 또 하루를 살아낸다. 부모가 된다는 건, 그렇게 끝없는 책임을 견디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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