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을까..
사고 이후, 대겸은 예전 같지 않았다. 한때는 3교대 생산라인을 책임졌던 기술자였지만, 이제는 주간 근무조차 벅찼다. 몸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았고, 또다시 부서를 옮겨야 했다. 이번엔 경비직. 중소기업의 정문을 지키는 2교대 근무, 고정 월급을 받는 일이었다. 땀과 기름때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일. 자존심은 접고, 다시 “가장”의 이름으로 일터에 섰다.
그 사이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형편은 여전히 넉넉하지 못했다. 더 저렴한 전셋집으로 이사했고, 은행 대출은 늘어만 갔다. 아내도 전일제로 일을 시작했다. 대겸은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지만, 직장과 모임에서는 늘 허허 웃으며 자리를 지켰다. 가진 것 없는 삶, 배움도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낮추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깨달았다.
“내가 쓰러졌을 때,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다시 일으켜야지.”
그는 봉사단체 문을 두드렸다. 장애인복지관, 노인복지관, 말벗 봉사, 도시락 배달, 청소 봉사활동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쉼 없이 움직였다. 그 시간들이 어느새 자신을 회복시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던 중 친구를 따라 강남까지 간 자리에서, 엉겁결에 써 낸 수필이 계간지에 실렸고, 등단 통보를 받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작가’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텃밭을 바라보던 날, 그는 새로운 꿈을 품었다.
‘기촌을 해볼까?’
농업기술센터에서 도시농부 과정을 수료하고, 고향 선배의 도움으로 텃밭을 분양받았다. 그가 택한 작물은 야콘. 당뇨에 좋다는 말에 가족 건강을 생각해 선택한 뿌리작물이었다. 맨손으로 땅을 일구고, 삽으로 파고, 잡초를 매며 밭일을 시작했다.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밭에 들러 흙을 만지고 땀을 흘렸다. SNS에 올린 소소한 사진과 글이 블로그 이웃들의 반응을 불렀다.
“대겸이 또 뭐 심었대?”
“야콘 덕후 인증~”
그 댓글들이 그의 하루를 견디게 했다. 그러나 무리였을까. 결국 허리가 다시 무너졌다. 수술대에 올랐고, 기촌의 꿈도, 야콘 텃밭도 잠시 접어야 했다.
하지만 대겸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카메라를 들었다. 산행 중 마주한 풍경, 봉사활동 중 마주한 어르신의 미소, 저녁노을 물든 텃밭 자락까지. 그 모든 것이 렌즈에 담겼다. 사진과 글을 모아 블로그에 올리고, 동영상을 만들어 SNS에 공유하는 일은 그의 또 다른 ‘삶의 방식’이 되었다.
어느 순간, 그는 ‘수필 작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이자 기록자로서 봉사현장을 찾아가고, 산골 작은 버스킹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무대 뒤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의 진심을 영상으로 담았다. 때로는 골목길 청춘들의 거리공연, 때로는 시골 마을의 작은 음악회. 현장 속 빛나는 순간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기록한 글과 영상은 ‘신문사 오늘의 이기’ 코너로 나가기도 하고, 지역 SNS 채널과 블로그 뉴스에 실렸다.
"요즘 뭐 하세요?"
누군가 물으면 그는 웃으며 말했다.
“사진 찍고, 글 쓰고, 회사 다니고, 밥 벌어먹고 삽니다. 아직 가장이라서요.”
세상은 그를 '경비원'이라 불러도, 그는 스스로를 작가이자 기록자,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는 '가장'이라 믿는다. 늘 카메라를 들고 산에 오른다. 산 아래 어딘가에서 웃고 있을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오늘도 그는 다짐한다. 열심히 살아가야지. 더욱더 마음굳게 다졌다.
#강동환 #소설가 #출판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