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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호 May 28. 2024

독립영화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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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소풍]



일요일 책을 읽고 시간이 좀 남아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한 편의 잔잔한 영화를 만났습니다.  올해 2월에 개봉해 약 35만 명의 관객이 관람한 [소풍]이라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으로 나오신 분들이 나문희 선생님(40년생), 박근형 선생님(40년생), 김영옥 선생님(37년생) 세 분 이신데요.  평균연령 84세, 연기 경력 도합 200년이 넘는 베테랑 배우들이십니다.  영화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깁니다.


세 분은 중학교 동창생들인데요.  은심(나문희 분)의  하나뿐인 아들(류승수 분)이 치킨 가맹점 사업을 하다 불량 식용유를 가맹점에 공급하는 바람에 불매운동과 가맹점주들의 단체소송 등으로 회사가 날아갈 위기 상황에 몰립니다.  철없는 중년의 아들은 어머니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달라하고, 이에 지친 은심은 오랜만에 자신의 집을 찾아온 사돈이 된 동창 금순(김영옥 분)과 함께, 야반도주하듯 떠나온 고향 남해를 60년 만에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고향 동창들은 여전히 고향을 지키고 있었지만, 리조트 개발 광풍이 불어, 현지 분들은 개발 반대 데모를 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깁니다.  여기서 중학시절 은심을 짝사랑했던 태호(박근형 분)를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게 되죠.  거자필반 회자정리.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어르신들은 연세가 있으신지라 여러 가지 말 못 할 질병과 고민을 안고 사십니다.  은심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고, 금순은 골다공증으로 수술조차 불가능한 허리병으로 통증이 심해질 때면 움직이지도 못해 누운 자리에서 대소변을 지리기도 합니다.  양조장을 딸과 함께 운영하는 태호 역시 뇌종양 투병 중이죠.  그럼에도 불구어르신들은 자녀들이 걱정할까 봐 알리지도 않고 혼자 묵묵히 견디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오랜 친구 청자(최선자 분)의 집을 찾아 가는데, 웬걸?  집은 비어있고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는데, 청자의 자녀들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홀로 맡기고 해외 이민을 떠나 버렸네요.  한 걸음에 친구가 입소해 있는 요양원을 방문해 보니, 청자는 손발이 묶인 채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자녀에게 버림받았다는 분노에, 그 분풀이를 요양원 간병인들에게 행사하다 보니 그리 된 모양입니다.  청자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은 이야기합니다.  어차피 우리도 요양원에 들어오겠다고.  같이 오손도손 지내자고.   이 말에 청자는 단말마처럼 이야기합니다.  이곳은 내 집 놔두고 사람 살 곳 아니라고요.


리조트 개발에 반대하다 밀려 넘어져 머리를 다친 태호는 결국 뇌종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고, 아버지가 떠난 뒤에서야 사인을 알게 된 딸은 절규합니다.  보는 동안 양심이 찔려 오더군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어렵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고요.


스토리를 적다 보니 대게 우울한 영화인 듯 보일 수 있지만, 그리 그레이 하지만은 않은 영화입니다.  보고도 양심이 찔리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 거라는 테스트?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네 친구 할 끼야”.  은심과 금순은 김밥을 싸, 둘 만의 소풍을 갑니다.  여기서 BGM으로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 曲이 깔리면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잘 어울리더군요.  음악감독님이 누군지 궁금해집니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걸음을 내어요/ 깊게 패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자국을 내어요/ 깊게 패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후략)


[소풍]이란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귀천>이란 시를 쓴 천상병 시인이 떠오르더군요.  이 시의 맨 마지막 장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입니다.  은심과 금순 두 분이 김밥 싸들고 떠난 소풍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소풍을 의미하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시간이 되실 때, 마동석의 <범죄도시 4>도 좋지만, 영화 <소풍>도 관람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더불어 부모님께 안부전화도 함께요.


#소풍  #임영웅  #모래알갱이  #나문희  #박근형  #김영옥  #천상병  #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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