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호퍼, 방대수 譯, 이다미디어, 2014년 2월 개정(2003년 原출간), 볼륨 208쪽.
동지가 지났으니 다시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겠네요.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 탄핵정국으로 정치도, 사회도, 경제도 온통 어지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잡아야 하니, 집어 든 책이 에릭 호퍼의 [길 위의 철학자]입니다. 사실 이 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녁 걷기 운동하며 [일당백]을 듣다 알게 된 분입니다.
에릭 호퍼는 미국의 사상가이자 저술가입니다. 일용노동자, 부두노동자로 생활하며, 짬짬이 도서관에 다니며 독서를 통해 독학으로 자신만의 사유체제를 구축한, 말 그대로 ‘길 위의 철학자’입니다. 1902년 독일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 브룽크스에서 태어나 7세 때 시력을 잃고 15세까지 맹인으로 지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읽고 쓰기를 5세에 익혔다는 점인데요. 기적적으로 시력을 되찾은 이후, 언제라도 다시 시력을 잃게 될까 봐 독서에 광적으로 집착합니다. 18세에 부친마저 돌아가시고, 생업을 위해 L.A.로 이주합니다. 식당 웨이터 보조, 농장의 품삯 일꾼, 사금채취공 등을 전전하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입대를 지원했으나 신체적이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부두노동자로 25년을 일하고, 65세에야 부두노동자 일을 접고 집필에 매진하다 1983년 81년의 생애를 마치신 분입니다. 독학한 부두노동자 & 철학자, 사회철학자, 프로레타리아 철학자 등으로 불리며, 1960년대부터 약 30년간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국 정책, 이스라엘 문제, 흑인혁명에서의 지도력 실패 등 현대사회 전반에 관한 폭넓은 견해를 피력하면서 미국 사회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시킨 분입니다.
이 책은 호퍼의 自敍傳이자 1983년 遺作으로 출간된 책입니다. 글이 짤막합니다. “어떤 생각이든 그걸 표현하는데 200字 장도면 충분하다”는 그의 ‘짧은 글 정신’이 반영된 아포리즘 형식입니다(각각의 에피소드가 200자 미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짧은 글에 대한 ‘맛보기’를 한 번 보고 가실까요?
“敎育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 주는 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배우는 사회이다.”
“絶對 權力은 선의의 목적으로 행사될 때에도 부패한다. 백성들이 牧者를 자처하는 자비로운 군주는 그럼에도 백성들에게 양파 같은 복종을 요구힌디.”
“言語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던 때부터이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어떠신가요? 읽고, 사색하고, 글을 쓰는 호퍼의 독학의 경지가 느껴지시나요?
자질구레한 일상과 관련된 27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1930년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후 “노동자는 죽고, 방랑자가 태어났다.”는 스스로의 외침이나, 단 하루 오렌지 가정방문판매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구입자의 과일 보관함에 숙성이 좀 더 필요한 과일은 하단에, 잘 익은 과일은 바로 먹을 수 있게 상단에 위치하게 정리하는 장면, 잎이 하얗게 말라죽는 백화현상이 붕소 때문임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감귤연구소장으로부터 제안받은 대학 연구원 자리를 고사한 일, 요리를 잘하는 이탈리아人 마리오와 식사하다 1936년 무솔리니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결별한 에피소드 등 일상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장면들에 대해 번역자인 방대수 님은 이 책에 대해 “인간과 세계를 비춰주는 거울”이라 평합니다.
잔뜩 기대를 안고 읽으면 실망하실 수 도 있는 책입니다. 대신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음미하며, 호퍼의 일생과 연관 지어 읽으신다면 호퍼의 펜이 되실 겁니다.
우연히도 친한 지인에게 호퍼의 첫 책 [맹신자들(1951)]을 읽고 소감을 정리해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1930년대 파시즘 등 대중운동과 그 가담자들에 대한 분석의 古典으로 평가받는 이 책도 조만간 읽게 될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