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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독후기록 11] 그리다가, 울컥

이기주 님 어반스케치

by 서민호

[그리다가, 뭉클]

副題 : 매일이 특별해지는 순간의 기록

이기주, 터닝페이지, 2024년 10월, 볼륨 291쪽.



작년 말 우리 집 家長(집사람, 와이프, 아내, 허니 등으로도 부를 수 있는)이 십 여권의 미술 관련 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방구석 미술관 1. 2] 등과 함께 이 책도 포함되어 있었네요. 작가 이름보고 [말의 품격], [보편의 단어],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인 줄 알았습니다. 동명이인입니다. 책상 한편에 쌓아두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다른 대출 도서 반납기한에 밀려, 이제야 손이 닿았습니다.


이기주 님은 건축을 전공했다는 것, <이기주의 스케치>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구독자 40만 명의 크리에이터라는 정도만 정보를 알 수 있네요.


책은 글 반 그림 반입니다. “누구나 겪었을 순간의 장면과 한 번쯤은 생각했던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소소한 우리들의 일상 모음집”이라 작가 스스로 이 책의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日常에서 마주치는 익숙한 풍경에도 관심과 애정을 담고 보아야, 그때서야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는 걸 책을 읽고 보며 알게 됩니다.


년 반쯤 전에 친한 친구가 어반 스케치를 시작했습니다. ‘하다 말겠지’ 했는데 살인적인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꾸준히 그림을 배우고 야외 스케치를 나가더니,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을 그려 내더군요. 더불어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더니 반년 만에 작품 게시물 990개에 팔로워 4,200명을 달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에게 잘 맞는 평생 취미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의 기본이라며 매일매일 선긋기 연습을 수 백일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열정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렸습니다.

친구 덕분에 어반 스케치와 어반 드로임의 차이점(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게 어반 스케치, 장면을 사진 찍어 보고 그리는 그림이 어반 드로잉)도 알게 되었고, 시작부터 끝까지 종이에서 펜을 떼어내지 않은 상태로 그림을 그리는 컨투어 드로잉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손 글씨를 이용해 구현하는 시각 예술인 캘리그래피에 푹 빠져, 저랑 잘 놀아주질 않네요 ㅎㅎ.


책을 보다 보면 행복함이 느껴집니다. 해질 무렵 빨갛게 물든 노을 모습이나, 도시에서는 불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의 아름다움, 농촌의 고즈넉하고 차분한 모습 등 우리가 자주 잊고 지내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전공하고 지금도 작품 활동을 하는 오랜 지인이 “수채화를 제대로 그리는 게 참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무슨 말인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그림은 시간으로 그린다. 물이 적당히 말랐을 때 다음 색을 칠해야 하는 경우와 다 말랐을 때 다음 색을 칠해야 하는 경우의 사이 어디쯤을 꼭 집어 채색하는 건 늘 어려운 일이다… (중략) 그래서 수채화는 기다림의 그림이다.”는 문장을 발견하고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수록된 그림 보는 것만으로도 책값을 이미 한 책입니다. 거기다 그림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더해 있으니 안 읽으면 손해랄까요? 그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올해 11번째 책읽기.


#그리다가뭉클 #이기주 #이기주화백 #어반스케치 #어반드로잉 #독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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