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5 독후기록 71] 호의에 대하여

前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문형배 에세이

by 서민호

[호의에 대하여]

副題 :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문형배, 김영사, 2025년 8월, 볼륨 407쪽.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025.04.04 11:22분 탄핵인용 결정을 내린 前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문형배 재판관의 책입니다. 재판관님은 1965년 2월생으로 서울법대 83학번입니다. 등산과 나무를 좋아하며, 엄청난 독서광입니다. 오래전부터 도움이 될 생활법률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왔는데요. 1998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 블로그에 올린 글 1,500여 편중 120편을 선별, 한 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최초의 책이자 사회에 내놓은 마지막 책일 수 있다 하네요.


크게 3部로 구성되었습니다. 1部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전체 분량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하모니> <소원> <칠 번 방의 선물> <코리아> 등 다수의 영화 감상문이 등장합니다. 등산 이야기와 중학교 동창 산악회인 ‘언저리 산악회’(굳이 정상을 밟지 않고 적당한 곳까지만 올라갔다 하산한다 하여 언저리 산악회라 이름 붙였답니다) 산행을 통해 알게 된 나무 이야기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왕후박나무, 목련, 생강나무, 느티나무, 배롱나무, 구상나무, 소나무, 주목, 편백나무, 모과나무, 은행나무, 고로쇠나무, 녹나무, 전나무, 박태기나무, 칠엽수 등 이 등장하는데 식물도감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그만큼 해박합니다) 나무를 사랑해서인지 블로그 필명이 ‘자작나무’.


2部는 평생 동안 읽어왔던 독서일기입니다. 재판관님은 多讀家인데요. 지금까지 읽은 책만 2천 권이 넘는다고 하네요. 재미있는 사실은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반드시 끝까지 읽는데, 그리 좋은 느낌을 받지 않은 책은 독후감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한다네요 ㅎㅎ.

판사는 방대한 사건 기록을 읽는 고단한 직업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책을 읽는다는 게 존경스럽습니다. 주로 古典 중심의 독후감인데요. 특이한 점은 이런 책을 한 번 읽고 마는 게 아니라 여러 번 읽는다는 점입니다. 읽을 때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같은 책을 읽어도 매번 느껴지는 게 다르게 다가옵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은 짧게는 수십 년에서 수 천년 동안 전해 내려오고 널리 읽힌다는 점에서 고전 읽기 중심의 독서가 좋은 독서법이라 생각됩니다.


3部는 ‘사회에 바란다’는 제목으로 사법부 게시판에 올렸던 글과 진주지원장 취임, 이임사, 조정위원 위촉식 에서의 인사말, 부산가정법원장 취임사와 재직 당시 부산여성변호사대회에 참석하여 기조 강연한 내용(여성 권리 신장이 중심)을 담았습니다. 이에 더해 널리 알려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행한 후보자 인사말과 헌법재판관 취임사, 올 4월 19일 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더불어 38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며) 행한 이임사가 실려 있습니다.


전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책은 직접 구입해 이틀 동안 밑줄 그으며 읽었습니다. 한 시점에 집중적으로 작성된 글이 아니라 장장 27년간에 걸쳐 쓰인 글들이다 보니, 본인의 역사적 기록으로 보입니다. 그때 그때 어떤 생각과 고민들을 했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고1 겨울방학 때 독지가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 졸업 때까지 장학생이 되었고, 사법고시 합격 후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들은 말, “내가 아니었어도 자네는 오늘의 자네가 되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자네를 도운 게 있다면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 나는 사회에서 얻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었을 뿐이니 자네는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평생 동안 묵묵히 실천한 사람, 그래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판사란 직업이 두렵다(79쪽, 2008년 작성 글).”는 문장에서 그가 어떤 자세로 일해 왔는지를 엿볼 수 있네요.


여담입니다만 퇴직後 부산소재 某대학 로스쿨 교수로 가신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는데 아직까지는 백수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강연과 인터뷰 요청을 대부분 거절하는데 부득이하게 거절할 수 없는 강연만 몇 군데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빨리 정착하여 님의 선한 영향력이 후학들에게도 전염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책을 읽는 세 가지 이유로 1) 무지 극복, 2) 무경험 극복(간접체험), 3) 무소신 극복에 있다는 점. 1987년 6월 항쟁 이후 1988년에 발생했던 제2차 사법파동의 중요 인물이었던 故 한기택 판사(2005년 8월 가족과의 해외여행 중 심장마비로 사망)의 좌우명 ‘목숨 걸고 재판하기’를 이 책에서 다시 접한 부분은 과외 소득이었네요.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길 강추드립니다.


올해 71번째 책읽기.


#호의에 대하여 #문형배 #자작나무 #독후기록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5 독후기록 70] 다산에게 배우는 인생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