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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호 Feb 07. 2024

[2024 독후기록 7]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님의 책을 읽고

오늘 0시에 치러진 아시안 컵 축구 4강전 보셨나요?  요르단에게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2:0으로 패했습니다.  전반 시작부터 계속 밀리는 데다, 경기 내내 유효슈팅 한 개 없는 경기력으로 64년 만에 도전한 우승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나마 골키퍼 조현우의 슈퍼 세이브가 없었다면 아마 5:0 스코어도 가능했을 경기ㅠㅠ   대한민국 축구 참사의 날로 기억될 듯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2023.11월, 동아시아, 볼륨 311쪽(주 제외)


김승섭 님은 의사입니다.  실제 진료를 보는 임상의가 아닌 보건학자입니다.  2022년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로 옮겨와 재직 중이시네요.  프로필을 보면 참 많은 조사 연구를 하셨습니다.  구금시설 건강권 실태조사, 인턴/레지던트 근무환경 연구,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연구,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실태조사, 한국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 연구, 세월호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 천안함 생존장병 건강 연구,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자 근무 환경 및 건강연구, 코로나19 취약계층 건강불평등 연구 등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주로 소수자, 사회적 약자 등 취약계층의 환경과 건강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시는 분입니다.


작년 말 읽었던 前 광주 MBC 기자 김인정 님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 대한 독후기록을 남겼더니, 어느 분께서 이 책도 읽어보길 권하는 댓글이 달려 읽게 되었습니다.  구입하고 다른 책 읽느라 잠시 묵혀 놓았던 책인데, 막상 읽기 시작하자 중도에 쉬지 않고 단숨에 읽었네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라는 書名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마음자세입니다.  “제게 공부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언어였습니다”라고 서문에 밝히고 있어요.  공부를 할수록 세상은 복잡하고 변화는 쉽지 않다는 점을 알아가게 되었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질문을 포기할 수 없었답니다.  자신은 연구자이지 활동가는 아니었기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까지만 연구자의 몫이라 선을 긋습니다.  스스로 아픔과 고통의 당사자는 될 수 없었기에, 연구자로서 냉점함을 유지한 채 학술적 언어로 정리하게 되었고, 책을 통해 한국사회 대중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으십니다.


총 4장 구성입니다.  사실 어느 장부터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흑인(인종), 여성, 성 소수자를 차별해 온 기득권의 논리, 한국의 예멘 난민 수용 논란, 화려한 매장에서 근무하지만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일하는 화장품 판매 노동자나 중환자실 간호사 분들의 ‘오줌권’ 이야기 등이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자 들이 보내는 모멸적 시선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상시적인 삶의 환경이라, 그것을 차별이라고 조차 부르지 못하는 환경을 이야기하며, 차별은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함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타인의 삶을 내 경험에 따라 재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임을 경고합니다.  더불어 지구 최강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힘은 다름 아닌 ‘다양성’이었다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모여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람직함을 강조합니다.

하버드대학교가 1636년 개교 이후, 1945년 첫 여학생이 입학하기까지 300년 넘게 남학생들만 공부할 수 있는 학교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네요.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회문제 해결은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함도 지적하고요.


“재난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는 약자를 먼저 덮친다.  가장 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의 연쇄를 막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적이고 성급한 대책 발표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정책으로 생겨날 영향력을 면밀히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난한 협의 과정이고, 그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인지와 인내가 필요하다”(162쪽)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일에는 필히 노력이 필요합니다.


천안함 폭침 사건과 관련 생존장병들에게 ‘패배자’ ‘둘이 있으면 배 침몰 시킬 놈’이란 비아냥을 해 온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이와 관련해 “타인의 고통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조금 침묵하고 기다려야 한다.  판단을 유보하고 배워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말하면서 상대방을 모욕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적하시네요.  이 사건을 국가를 지키는 군인들로서 입은 피해이니 ‘산업재해’라고 표현함이 신선했어요.  산업재해라고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보게 된다면서요.  사건보다 사람이 먼저여야만 우리는 피해자의 몸에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먼저 볼 수 있겠죠.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들은 외롭다.  그들의 입장에서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연대해 주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사람이 나아가는 건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는 구절에선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한 개인의 몸 안에 있는 고통, 슬픔들이 사회적 고통이 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계기는 누군가가 응답하기 시작할 때다.  그 응답을 잘 해낼수록, 많은 사람이 함께 할수록 그 고통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당부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읽는 동안 전에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에 대해선 부끄럽고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만, 더 좋은 사회를 위해 누군가는 이런 부분들을 연구하고, 제대로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져 봅니다.

의사출신으로 경제정책을 연구하는 싱가포르 과기대 김현철 교수님, 그리고 이 책을 쓰신 김승섭 님과 같은 분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저자분이 쓰신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천안함 생존장병 이야기랍니다)도 찾아 읽어 볼 생각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우리가 되길.


올해 7번째 읽은책

#김승섭  #타인의고통에응답하는공부  #보건학자  #독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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