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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호 Feb 10. 2024

[2024독후기록 8]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님의 에세이집

음력설 정월 초하루입니다. 가족 친지분들과 좋은 시간들 보내고 계신가요?  긴 연휴에 모처럼 늦잠도 즐기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마디북, 2023년 8월, 볼륨 319쪽.


[빨치산의 딸],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님의 에세이집입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 굳이 따로 소개는 필요하진 않을 듯 하지만 그래도 간략히 소개하자면,  25세에 등단한 65년생으로 내년이면 환갑이십니다.  [아버지의 해당일지]로 느지막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셨네요. 고향인 구례에서 98세 어머님과 고양이 네 마리, 멍멍이 두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멍멍이중 한 녀석인 '호랭이'(성격도 이름 따라가는 모양입니다)는 이웃집 닭 백 마리를 폐사시킨 적이 있다고 하니 산골에서 사시는데 무섭지는 않으실 듯하네요.


책 이름에서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술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스스로를  '술꾼'이라 칭하시고요.  소설이란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자신을 술꾼으로 만든 건 사람이었다고 하시네요. 자신이 술꾼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어릴 적 추억의 술 캡틴큐를 발견하고 기뻤습니다. 조그마한 병 라벨에 애꾸눈을 한 하록선장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던 캡틴큐. "마시는 누구도 거의 혼절에 이르게 하는 기적의 술"이라는 표현에, 어찌 이리도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존경스러웠습니다.


블루(조니워커 블루)와 발삼(밸런타인 30년 산)을 사랑하시며.  안주로는 물이 최고라고.(이 부분에 저는 동의 못합니다. 술안주가 좋아야 속이 편하거든요. 많이 마실 수 있고)


""너는 왜 사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사는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깐...(중략)...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어찌어찌 태어났으므로 우리는 어찌어찌 살아내야 한다"(59쪽)는 문장에 밑줄 쫙.  어찌어찌라는 단어가 특히 마음에 다가옵니다.


"위스키든 소주든 천천히 오래오래 가만히 마시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96쪽)

제가 연민을 잘 못 느끼는 게 원샷에 급히 마시기 때문이었군요?!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거라는 소신(안 그러면 물이죠)을 평소 갖고 있다 보니 천천히 못 마시거든요.  이젠 나이도 있으니 속도조절이 필요해 보이긴 합니다.


"통조림엔 유통 기한이 있지만 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말에서도, 아일랜드인 교수가 선물해 준 '레드 브레스트'라는 아이리쉬 위스키에 얽힌 잔잔하지만 짠한 추억도 마음에 담아 갑니다. 혹 궁금하시면 읽어보시거나 오백 원.


소설가이시기에 허구가 들어있을 거란 예상은 No.

에세이는 가벼운 글이잖아요. 기억의 왜곡으로 일정 부분 사실에서 벗어난 것도 있을 테지만, 술을 통해 사람들과의 이야기, 술은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기도, 친하게도 멀어지게도 만드는 요묘한 것임을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로부터 해방되어 오롯이 자기로 돌아갈 수 있어야  진짜 술이다"라는 문장에 가슴 한 곳을 찔린 듯합니다. 어느 숙취해소제 광고문구였던, "사람은 떡이 될 수 있지만, 떡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떡이 되기 전에 사람의 모습을 견지함이 필요할 듯합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가득 채워진 위스키 스트레이트 잔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작가님 사진이 보기 좋네요.  


초지일관 애주가를 위하여 건배,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8번째 읽은책


#정지아 .마시지않을수없는밤이니까요 #정지아에세이

#술꾼 #주당 #애주가 #캡틴큐 #독후기록 #발삼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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